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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마등령

Daily/Hiking 2021. 10. 12. 23:07

2021. 10. 10.

 

며칠전부터 공룡능선을 노려보고 있었다. 공룡능선을 완주하고 나면 두려울게 없을 것 같았다. 이번 주말이 대체휴가로 휴일이 하루 더 붙어서 쉬기에도 좋았지만 토요일에 비가 오는 바람에 하루 공쳤다. 그리고 난 구름이 잔뜩 낀 날에 무언가 새로운 풍경을 바라며 산행을 준비했다. 하체 컨디션도 잘 잡아놨고, 잠도 잘 잤다. 어짜피 날이 흐리니 일출은 어림없으므로 일찍 서두르지도 않았고 그저 페이스 조절만 잘해가기로 마음먹었다. 새벽 5시 20분쯤인가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내 앞에 대기열만 10대가 넘었다. 그 시간에 누가 빠져줘야 들어갈텐데 누가 그시간에 나갈꼬; 이게 바로 단풍시즌의 위력이겠지. 난 스피드하게 약간 먼곳에 대고 산행을 시작했다.

 

※ 코스

설악산소공원주차장 - 비선대 - 금강굴 - 마등령삼거리 - 원점회귀

 

입장료를 내고 깜깜한 소공원을 지나면서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를 들어보니 어제 비가 꽤 내리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질퍽한 진흙길과 미끄러운 돌 때문에 험난한 등반이 예상됐다. 비선대에는 입산전 재정비 하는 3~4 팀들이 모여있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구름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늘도 간혹 보였다. 언제나처럼 나홀로 쓸쓸히 금강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쯤부터 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먹구름이 심상치 않아 다시 기상청을 확인해보니 강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계속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기상청. 하필 오늘같은 날... 어짜피 신발과 바지는 진흙으로 걸레가 됐고, 비도 거의 흩날리는 수준이라 등반에 큰 무리는 없었지만 하산시 미끄러운 돌길들이 걱정됐다. 마등령삼거리까지 가는 내내 공룡능선을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마등령삼거리 도착했는데, 나처럼 고민하다가 되돌아 가는 팀들이 꽤 많았다. 일단 비에 젖은 바위길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그쪽으로는 뷰도 거의 없었다. 결국 난 깔끔하게 공룡능선을 포기했다.

 

 

마등령코스를 되돌아 보자면,  지난번에 무너미고개까지 3시간 걸렸는데 마등령삼거리까지 4시간 걸렸다는게 납득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만큼 난이도가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뷰는 정말 예술이다. 어짜피 공룡능선 보고 주구장창 올라가는거긴 하지만 그 사이 구름이 조금 받쳐 준다면 기가막힌 절경을 감상하면서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래서 약간 구름낀 날씨를 선택했던 것인데... 암튼 설악산은 역시 설악산이다. 최고의 절경! 그리고 단풍시즌에 여유있게 주차하고 싶다면 최소 새벽 5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한다는점... 오후1시 정도에는 위 사진처럼 소공원 3km 전방이 모두 주차장임. 도로 위에서 시간 버리고 싶지 않으면 아예 안가는게 상책.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산하는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단 비선대에서 마등령삼거리까지 3.5km 구간에 어찌됐든 3시간이 걸렸고 그대로 4.5km 짜리 공룡능선을 넘는다면 5시간은 더 걸릴듯 했다. 또 무너미고개에서 주차장까지 대충 3시간. 마등령삼거리에서 발걸음을 돌리기 전에 공룡능선을 한참을 쳐다봤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왔는데도 이렇게 물러날 수 밖에 없음에 이번 생에는 저 능선을 건너지 못할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자괴감을 고이 가지고 하산을 시작했고 남은 체력을 소진하느라 거의 뛰어 내려왔다. 무릎이 멀쩡해서 뛰어 내려온 건 아니고 아프지만 견딜만 해서 뛰어 내려왔다. 젖은 바위들 때문에 몇번을 움찔움찔 했지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내려왔다. 무사한줄 알았는데 다음날 허리가 아주 작살이 나있었다. 무릎은 반작살. 등산을 정말 접어야 할랑가보다. 새로 산 등산화랑 등산스틱은 아직 개봉도 않했는데... 간만에 또 제대로 삐졌다. 조용히 헬스나 해야할 팔자인가... 유유...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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