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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

History (Korea)/-917 2014. 1. 27. 22:37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년 ~ 540년)은 신라의 제23대 임금이다. 지증왕과 연제부인(延帝夫人)의 맏아들로써 본관은 경주(慶州), 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원종(原宗) 또는 모즉지(牟卽智, 另卽智)이다. 왕비는 박씨 보도부인(保刀夫人)이다.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법명은 법공(法空)이다.

 

법흥왕은 병부(兵部)를 설치하여 군제를 개혁하였고, 율령(律令)과 관제를 반포하였으며, 상대등(上大等) 관직을 설치하였다. 상대등은 신라의 최고 관직으로서 대등으로 구성되는 귀족회의의 주재자였으며, 왕권의 강화를 단적으로 나타낸 제도이다.
마라난타(인도의 승려)에 의해 들어온 불교를 귀족들이 반대했으나 이차돈의 순교를 거쳐 국교로 정하여 통치체제를 개혁하고 신라의 국민 사상을 통일시켰다. 또 금관가야가 신라에 투항함으로서, 낙동강과 남해안의 교통상의 요지인 김해를 발판으로 가야의 여러 나라를 정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신라 역사상 처음으로 건원(建元)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므로써 이후 신라 중고(中古) 왕실의 거의 모든 왕들은 자기의 독자적인 연호를 가지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전통 사회에서 중국의 주변 국가가 중국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 연호를 사용했다는 것은, 일단 중국과 대등한 입장에서의 국가임을 자각한 자주 의식의 표현이라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

 

  • 3년(서기 516)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 지냈다.
  • 4년(서기 517) 처음으로 병부(兵部)를 설치하였다.
  • 5년(서기 518) 주산성(株山城)을 쌓았다.
  • 7년(서기 520)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모든 관리의 공복(公服)을 제정하였다. 붉은색과 자주색으로 등급을 정하였다.
  • 8년(서기 521) 양(梁)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 9년(서기 522) 대가야국 왕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기에, 임금이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여동생을 보냈다.
  • 11년(서기 524) 임금이 남쪽 변방을 두루 돌아보며 영토를 개척하였다. 가야국 왕이 찾아와 만나보았다.
  • 12년(서기 525) 대아찬 이등(伊登)을 사벌주(沙伐州, 경북 상주) 군주로 삼았다.
  • 15년(서기 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 16년(서기 529) 살생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 18년(서기 531) 이찬 철부(哲夫)를 상대등(上大等)으로 삼아 나라의 일을 총괄하게 하였다. 상대등이라는 관직은 이때 처음 생겼으니, 지금의 재상(宰相)과 같다.
  • 19년(서기 532) 금관국(金官國)의 왕 김구해(金仇亥)가 왕비와 세 아들인 맏아들 노종(奴宗), 둘째 아들 무덕(武德), 막내 아들 무력(武力)과 더불어 금관국의 보물을 가지고 항복하였다. 임금이 예를 갖추어 대접하고 상등(上等)의 직위를 주었으며, 금관국을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
  • 23년(서기 536) 처음으로 연호를 칭하기를 '건원(建元)' 원년이라 하였다.
  • 25년(서기 538) 지방관이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는 것을 허락하는 교서를 내렸다.
  • 27년(서기 540) 임금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법흥(法興)이라 하고, 애공사(哀公寺) 북쪽 봉우리에 장사 지냈다.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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