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 반란(사태)은 1979년 12월 12일,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 소장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등을 체포한 군내부의 반란이다. 후에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전두환은 1980년 9월에 11대 대통령이 됐다.
10·26 사건 이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박정희 측근의 정치군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인사조치안'을 계획한 것에 앙심을 품어, 하나회(1963년에 전두환, 노태우 등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이 비밀리에 결성한 조직)를 비롯한 동조 세력을 규합하고 신군부로 발전시켜 정승화의 체포를 계획. 12월 12일 10·26 사건 당시 정승화가 현장 주변에 있었고 김재규에게 묵시적으로 동조했다는 혐의를 내세우며 정승화를 체포하여 직위를 박탈시킴.
- 12월 12일 오후 6시경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체포안에 대한 재가를 제안했으나 거절 당함.
- 12월 12일 오후 7시경 정승화를 체포하기 위해 병력이 투입됐으며,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
- 12월 12일 오후 7시 20분경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
- 12월 12일 21시 30분경 전두환은 다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의 연행/조사 재가를 재차 요구하였으나 또 거절 당함.
- 12월 13일 새벽부터 신군부 세력은 국방부, 육군 본부, 수도경비사령부 등 주요 군시설을 점령하여 군부의 실권을 완전 장악.
- 12월 13일 새벽 4시경 사후 재가가 이루어짐.
- 12월 13일 오후 10.26 사건 연류 혐의로 정승화 총장의 연행을 발표하고 전두환은 지맘대로 군부의 인사를 조정하여 군 주도권 장악.
1996년 전두환, 노태우등의 신군부 핵심 인사는 12·12 사건 반란혐의, 5·18 사건 내란혐의로 구속 기소되고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 보복은 없다'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김영삼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 사면시킴.
WRITTEN BY
-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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