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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금성 / 신흥사

Daily/Diary 2019. 3. 18. 21:11

권금성 코스는 설악산의 여러 코스 중 하나로, 신흥사 주차료 4천원, 입장료 3.5천원(1人), 케이블카 탑승요금 1만원(1人)만 내면 스피드하게 속초, 동해, 설악산 경치를 구경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코스이다. 사람도 많고 대기시간도 길지만 악천후를 노려 일자를 잘 선택하면 나처럼 대기시간 없이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강풍시 케이블카 운행 안함) 케이블카 5분, 등산 5분이면 해발 850m 의 권금성 정상인 봉화대에 도착한다. 권금성은 권씨와 김씨 두 장사가 난을 당할 때 쌓은 성이라 권금성이라고 한다; 봉화대를 중심으로 길이 2.1km 의 산성이 펼쳐져 있다는데 현재 성벽은 거의 허물어져 터만 남아 있다. 승강장에서 아래로 5분 내려가면 해발 700m 에 안락암이라는 작은 절이 있는데 신라 진덕여왕(652년) 때 세워진 암자로 800년이 넘은 무학송이 있다고 하나 악천후로 생략했다;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10분만 걸으면 신흥사를 구경할 수 있다. 신흥사는 진덕여왕(652년) 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며, 본래 이름은 '향성사' 였는데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가 지금의 신흥사가 되었다. 유명세에 비해 규모는 꽤 소박한 편이며, 남북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통일대불' (높이 14.6m, 청동 108톤) 이 인상적이다. 설악산 커피볶는한옥 '설향' 에서 잠시 눈을 피하며 계피생강차 한 잔 때리고 간단한 산행(?)을 마쳤다. 사실 입장료와 주차료가 아까워서라도 울산바위(왕복4시간) 까지 다녀왔어야 하는데 하늘이 허락치 않아 다음 기회를 노려본다.



* 권금성 추천코스 : 케이블카 -> 권금성 봉화대 -> 안락암 -> 신흥사 -> 흔들바위 -> 울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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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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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왕

History (Korea)/-917 2014. 1. 23. 20:41

 

 

신라의 22대왕으로 성은 김(金),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며 신라 최초로 지증(智證)이라는 시호를 얻었다.

 

  • 502년 - 한국의 고대 사회부터 전해지던 순장 풍습을 최초로 폐지하고, 신궁에서 제사를 지냈다. 농사에 소를 부리는 우경법을 처음으로 시행했다.
  • 503년 - 신로·시라·서나·서야·서라·서벌·서라벌·계림 등으로 불리던 국호를 '덕업이 날로 새로워지고,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의 '신라'로 통일하였다.
  • 504년 - 음력 4월 상복법을 제정하고, 음력 9월에 파리, 미실, 진덕, 골화 등 12성을 쌓았다.
  • 505년 - 임금이 몸소 나라 안의 주(州)ㆍ군(郡)ㆍ현(縣)을 정하였다.
  • 509년 - 무역과 상인들의 거래를 단속, 통제하는 관청인 동시전(東市典)을 설치하였다.
  • 512년 -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켜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게 하였다

 

 

* 지증왕 설화

 

지증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체구가 컸으며, 한국 역사상 가장 큰 옥경(玉莖,성기)을 가진 임금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지증왕의 옥경은 무려 1자 5치로 요즘 수치로 환산하면 약 45센티미터라고 한다.
신하들이 왕비가 될 여성을 찾으러 다니던 중 경주 남산의 연못에 큰 똥덩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큰 똥의 주인을 수소문한 끝에 박등혼의 딸을 간택하여 왕비로 들이니 그가 왕비인 연제부인(23대왕 법흥왕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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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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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화의 내용이 천하 이치의 핵심만 드러내 무척 감명 깊습니다. 그림도 감명 깊고, 이름도 감명 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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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

History (Korea)/-917 2014. 1. 15. 23:43

 

 

신라 소지왕 때 한 노인이 나타나 편지를 전해준 곳이라 하여 이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편지로 소지왕을 위험해서 구해내고, 이 전설을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갑을 쏘아라) 전설이라고도 한다.

 

 

사금갑(射琴匣) 전설

 

신라 21대왕 소지 마립간이 즉위 10년(488년)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라고 했다. 왕은 기병을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는데, 기병이 동남산 피촌(避村)에서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다. 어쩔 줄을 몰라 그 주변만 맴돌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연못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기병에게 봉투를 주었고, 그 겉에는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 이라고 쓰여 있었다. 기병이 돌아와 이것을 바치자, 왕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그냥 열어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낫겠다"며 글을 읽지 않으려 했는데, 일관(日官)이 "두 사람은 서민을 가리키는 것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라고 진언하였다. 왕이 마침내 그것을 열어 보니, 안에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갑을 쏘아라)' 고 적혀 있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쏘자, 거문고 갑 안에서 숨어있던 중과 왕비가 튀어나왔다. 그 중은 왕비와 사통하면서 왕을 해치고자 거문고갑 속에 잠복하던 중이었다. 개봉하면 두 사람이 죽는다는 예언서대로 왕비와 중은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후 신라에서는 정월 상해일(上亥日)·상자일(上子日)·상오일(上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고 특히 15일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까마귀에게 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정월 대보름 절식(節食)의 하나로서 약밥을 먹는 풍속의 유래가 되었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 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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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월성동 | 서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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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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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호

History (Korea)/-917 2014. 1. 13. 22:43

 

 

고구려나 백제가 일찍부터 중국식 지배자의 명칭인 '왕'을 사용한 데 반하여, 신라는 오랜 기간 동안 독자적인 왕호를 사용하였다. 신라의 왕호는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왕 등으로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이런 변화는 신라의 발전과정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 거서간(1:혁거세) : '태양'의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신령한 제사장을 뜻함.
  • 차차웅(2:남해) : '무(巫)'라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정치적 군장을 뜻함.
  • 이사금(3:유리~16:흘해) :  '잇다'라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세습에 의해 군장의 지위를 이어받은 계승자를 뜻함.
  • 마립간(17:내물~22:지증) :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말뚝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우두머리를 뜻함.
  • 왕:(22:지증~56:경순) : 지배자

 

 

즉, 정치적 군장과 제사장의 기능이 분리되면서 거서간과 차차웅으로 그 칭호가 나뉘게 되었고, 박·석·김씨의 3부족이 연맹하여 그 연맹장을 3부족에서 선출하게 될 때에 연맹장이란 의미에서 이사금을 칭하였다. 이후 김씨가 왕위세습권을 독점하면서 왕권의 강화를 위해 대군장이란 의미의 마립간으로 바꾸었다. 그 뒤 왕위상속제를 확립하고, 이어 6부를 개편하여 중앙집권화를 추진하면서 마립간 대신 왕이란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신라에 선덕, 진덕, 진성 등의 여성 왕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 때문이었다. 성골만 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르자 성골 출신의 여자들도 왕이 될 수 있었고, 그 후엔 진골이 왕이 될 수 있었다.
또 왕궁에 살면서 왕이 되지 못한 왕의 형제나 혈족에게는 갈문왕(葛文王)이라는 칭호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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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History (Korea)/-917 2014. 1. 10. 23:33

 

 

혁거세 거서간(赫居世 居西干, 기원전 69년 ~ 기원후 4년, 재위: 기원전 57년 ~ 기원후 4년)은 신라의 초대 국왕이자, 한반도 일원에 살고 있는 모든 박씨(朴氏)의 시조이다.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들이 산골에 나뉘어 살면서 알천의 양산촌 등 여섯 개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것이 진한(辰韓) 6부가 되었다. 기원전 69년 여섯 마을의 촌장들이 자녀들과 함께 알천 언덕에 모여,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그를 임금으로 모시기로 의논하는 중에, 양산 기슭에 있는 나정(蘿井)이라는 우물 곁에서 번갯불이 솟아올라 일제히 그쪽으로 몰려가봤더니 자줏빛의 큰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안의 사내 아이는 몸에서 광채가 나며 태양과 달의 빛이 더욱 밝아져, 밝게 세상을 다스릴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혁거세 거서간(赫居世 居西干)으로 지었고, 알이 매우 커서 박과 같다고 하여 성을 '박'씨로 지었다.

 

혁거세 거서간는 13세에 촌장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기원전 57년), 왕호를 거서간(居西干), 국호를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여 신라를 건국하고, 재위 62년 만에 하늘로 승천하였다가 7일 만에 시신이 부위별로 나뉘어 흩어져서 지상으로 떨어졌다.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나타나 장사를 방해하여 양 다리, 양 팔, 그리고 몸통과 얼굴을 따로 묻어 무덤은 다섯 개가 되었고 이를 가리켜 오릉(五陵)이라 한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中

 

  • 5년(기원전 53) 봄 정월, 알영(閼英) 우물에 용이 나타나 오른쪽 옆구리로 여자 아이를 낳았다. 노파가 이를 보고 남다르다 여겨 거두어 길렀는데, 우물 이름으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자라나 덕성스러운 용모를 갖추었으니, 시조가 이를 듣고 왕비로 삼았다. 그녀는 행실이 어질고 내조를 잘하였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임금과 왕비를 두 사람의 성인이라 일렀다.
  • 17년(기원전 41), 임금이 6부를 두루 돌아보는 길에, 왕비인 알영도 따랐다. 농사와 누에치기를 열심히 하도록 권장하고, 토지의 이로움을 다하도록 하였다.
  • 19년(기원전 39) 봄 정월, 변한(卞韓)이 나라를 바쳐 항복하였다.
  • 21년(기원전 37), 서울에 성을 쌓고 금성(金城)이라 불렀다.
  • 26년(기원전 32) 봄 정월,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 30년(기원전 28) 낙랑이 침범하였으나 도덕의 나라라 하여 스스로 물러갔다.
  • 60년(서기 3) 가을 9월, 두 마리의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나더니, 폭풍우가 심하게 불고, 성의 남문에 벼락이 떨어졌다.
  • 61년(서기 4) 봄 3월, 거서간이 돌아가셨다. 사릉(蛇陵)에 장사 지냈으니, 담암사(曇巖寺) 북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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