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기원전 2333 ~ 기원전 108)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일컬어지는 고대 국가이다.
원래 이름이 '조선'이었으나 후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 고(古)자를 붙였다.
발견된 유적, 유물의 부족으로 정확한 연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시기상으로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에 해당한다.
고조선에 대한 역사는 <삼국유사>, <동국통감>,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사서의 기록에 의하며, 사서에 따라 내용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기원전 2333년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건국하였으며, 후에 아사달(평양 부근 황해도 구월산)로 수도를 옮겨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곰이 사람으로 변한 웅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한민족(배달)의 신화적인 시조이다. 단군왕검에서 단군은 대제사장적인 성격을 많이 담고 있으며 왕검은 국가를 통치하는 대군주의 의미를 띠고 있다. 즉 제정일치의 지도자이다. 인천시 강화군 마니산 꼭대기에는 상고시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참성단이 있다.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 고조선은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인 연의 공격을 받아 광대한 영토와 요동지방을 상실하고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기원전 221년에 진(秦)이 중국을 통일하고 기원전 214년에 만리장성을 건설하자 고조선의 부왕(否王)은 진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표면적으로 복속하였다. 준왕(準王) 때는 중국을 통일한 진(秦)에 내란이 발생하고 유방과 항우가 전쟁을 벌이는 등 중국이 혼란에 빠지자 중국 유민들이 대거 고조선으로 이주하였다.
기원전195년 중국 한(漢)나라 때에 연(燕)나라 장수 위만이 1,000여명을 이끌고 요동, 라오닝성으로 도망쳐 고조선 지역으로 망명하였다. 준왕은 위만을 신임하여 관직을 주고 변방의 수비를 맡기는데, 위만이 수도인 왕검성에 입성하여 준왕을 몰아내어 왕이 되고 이때부터를 위만조선(기원전 194)이라 한다. 패배한 준왕은 뱃길로 한반도 남부로 가서 한왕(韓王)이 되었다. 위만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안정을 도모하였고, 위만의 손자 우거왕 때는 한반도 남쪽의 진국(辰國)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한나라에 조공하는 것을 막고 중계무역의 이익을 독점하였다. 전한무제는 기원전 109년 수륙군을 동원해 위만조선을 공격하였고, 전쟁이 장기화가 되자 위만조선 지배층 내부가 분열되고 이탈되었다. 이 와중에 우거왕은 살해되고 왕검성도 함락되어 고조선은 멸망한다(기원전 108).
고조선 때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통치 조직이 확립되면서 8조법(팔조지교)이란 법률로 범죄를 처벌하였다.
그 내용으로부터 노비가 있는 신분제 사회, 경제력의 차이가 있는 화폐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위만조선은 한나라의 대군과 맞서 1년 가까이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철기문화(단검, 창, 도끼)와 이를 기반으로 한 군사력이 강하였다.
고조선은 단군이 세운 단군조선과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을 통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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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의 역대 국왕 : 단군-기자-부왕-준왕-위만왕-우거왕
* 기자동래설 : 기원전 1122년 중국 상나라(은나라) 왕족인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한뒤 조선의 군주가 되어 1천여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논란이 많다. 구분을 짓자면 이 때를 기자조선이라 한다.
* 진국(辰國) : 진(辰)은 BC4세기에서 BC2세기 무렵 한반도 중남부지역에 존재한 초기 집단이다.
고조선의 준왕(準王)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이민(流移民)이 밀려옴으로써 마한, 진한, 변한이 형성되었다.
진국을 다스린 진왕(辰王)은 마한 사람이 대대로 이어갔다고 한다.
마한 : 한반도 남부에서 서쪽에 접하고, 54개의 국가로 되어 있었으며, 후에 백제국을 중심으로 백제(百濟)가 되었다.
진한 : 한반도 남부에서 동쪽에 접하고, 12개의 국가로 되어 있었으며, 후에 사로국을 중심으로 신라(新羅)가 되었다.
변한 : 한반도 남부에서 남쪽에 접하고, 12개의 국가로 되어 있었으며, 후에 구야국을 중심으로 가야(伽倻)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