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新羅, 기원전 57년 ~ 서기 935년)는 고구려, 백제와 함께 삼국 시대의 삼국 중 하나로, 진한의 소국인 사로국에서 출발하였는고 기원전 57년 경 금성(경주 지역)에서 박혁거세에 의해 건국되었다. 고구려의 동명왕보다 20년 먼저, 백제의 온조왕보다 40년 앞서,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졌으며 왜군의 침략 때문에 국가의 틀을 세우는 데는 가장 늦었지만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였다.
한국사 전체를 통해서 볼 때는 보통 제29대 무열왕(654~661년) 이전을 삼국시대, 그 이후를 통일신라시대로 구분하지만 최근에는 발해와 신라가 병립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라는 용어보다는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 지증왕(22대 500~514년)은 계림, 사로, 서라벌 등으로도 불리던 국호를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서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으로 '신라(新羅)'로 정하였고(504), 왕에 대한 칭호도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의 신라어에서 중국식의 '왕'으로 정하였다. 이 때는 특히 농업발전 및 정치제도 정비, 중앙집권을 강화하였고 우산국(울릉도)을 정복(512)했다.
- 법흥왕(23대 514~540년)은 병부(국방부)를 설치(517)하여 군사 지휘권을 장악, 나라의 법령인 율령을 반포(520), 이차돈의 순교를 거쳐 불교를 공인(528), 금관가야 정복(532), 그리고 신라 역사상 처음으로 건원(建元)이라는 연호를 사용(536)하였다.
- 진흥왕(24대 540~576년)은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하였고, 고구려 지배 아래에 있던 한강 유역과 함경도 지역으로 진출하고 대가야를 정복(562)하는 등 신라의 전성기를 누리면서 정복 군주라 불렸다. 또 중국 당나라와 연합을 맺어(나·당 연합) 후에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는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게 된다.
- 태종 무열왕(29대 654~661) 김춘추는 최초의 진골 출신의 왕으로 통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왕권을 강화하였고, 이때부터 태종 무열왕의 직계 자손만이 왕위를 세습하였다. 신라의 역사에서 최초로 묘호를 받은 왕이다.
백제와 고구려 멸망 후에는 한반도를 장악하려는 당나라군을 몰아내고 삼국 통일을 이루었으며, 고구려멸망 약 30여 년 뒤 698년 발해가 세워짐과 함께 남북국 시대의 남쪽 축이 되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 경제도 많이 발전하였으며, 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경주를 비롯한 지방에 여러 대사찰을 세웠고, 자연과학·농업·천문학 분야에서도 큰 진전을 보였다.(첨성대)
불교의 융성과 함게 발달한 미술의 대표적인 것으로 8세기 중엽에 세워진 불국사, 석굴암, 석가탑, 다보탑 등이 있다.
신라는 혈통에 따라 골(骨)과 품(品)으로 등급을 나누는 신분제도 골품제가 있었다.
성골은 부모가 모두 왕족의 혈통, 진골은 부모 중 한쪽만 왕족의 혈통이었는데 무열왕 이전까지는 성골만 왕이 될 수 있었다.
이 신분 차별 제도로 점점 6두품과 지방 호족의 반발이 거세지며 신라의 기반이 약해진다.
8세기 후반부터 왕과 귀족의 사치와,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여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892년 견훤이 후백제를, 901년 궁예가 태봉(후고구려->고려)을 세워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함으로써 신라는 56대 992년 만에 멸망하였다.
신라는 천년에 걸쳐 한반도의 대부분을 통치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존속했던 왕조들 중 하나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