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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키보드

Daily/Diary 2021. 8. 7. 02:48
Varmilo VA87M RE PBT 45g (저소음적축)
RealForce R2 TKL R2TLS-US5-BK 55g (저소음)

 

이번에는 컴퓨터 키보드 이야기다.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사용한게 고1 부터 였으니까 28년 동안 참 오래도 두드렸네. 지금까지 가장 비싼 키보드를 샀던게 4만원짜리 로지텍 머시기였나. 펜타그래프. 마우스 이뻐서 사려다가 세트로 샀던게 가장 비쌌던 것 같다. 키보드는 그저 요상하게 생기고 불 들어오면 짱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그렇게 키보드에는 관심 1도 안가지고 살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팀에 이상한 애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조그맣고 요상한 키보드를 가져와서 관심을 받더니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디게 비싼 키보드라고 했다. 전혀 관심이 없었다가 도움을 주러 잠시 그 자리에 갔는데 Ctrl 인지 Shift 였는지 배열이 요상하게 되어 있어서 타이핑도 맘처럼 되지 않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 제품은 해피해킹 이었던것 같다.(최근엔 키보드 공부를 좀 했다) 그 이후 비싼 키보드에는 더욱 관심을 끊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다른 팀에 어떤 아웃사이더 녀석이 갑자기 엄청난 소리의 키보드를 사와서는 관종 짓을 했다. 난 키보드를 세게 치는 건줄 알았는데 원래 저렇게 소리가 크게 나는 키보드라고 했고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그것도 디게 비싼 키보드라고 했다. 난 정말 비싼 키보드에 정내미가 다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얼마전 모 회사를 방문했는데 그곳에 약 20명 정도의 개발자들이 전부 독특한 키보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는 브랜드를 몰라서 충분히 감탄하지는 못했다만, 키보드 소리가 아주 조용하고 고급져 보였다. 그 팀만의 스웩이 느껴지는... 그리고 집에와서 고급진 키보드의 필요성에 대하여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짜피 하루종일 키보드 두드리는거 비싼 키보드 두드리면 더 좋을까? 당연히 돈 ㅈㄹ이긴 하다. 타이핑만 하고 컴퓨터가 인식만 하면 그 뿐인데 여기다가 돈을 바른다고?ㅎㅎ 만원짜리도 있는데 굳이 30배를 주고? 똑같은 기름넣고 다닐거 이왕이면 비싼 차에 넣고 다니고 싶은 그런 마음과 동일할 것이다. 오히려 차에 비하면 키보드 가격은 아무것도 아니지.(과소비의 전형적인 타협)

 

그리고는 유튜브로 요즘 대세 키보드를 열심히 찾아봤다. 적축, 흑축, 청축 머 벼라별 것들이 다있었고 커스터마이징에 윤활 작업까지 이 동네도 이미 덕후들이 널려 있었다. 어떤 키보드가 내 마음을 사로잡을까. 일단 기계식 키보드 중에서도 접점 소리나는 것들은 다 패스. 소리나는 키보드를 쓸 수 있는 곳도 없을 뿐더러 그것들은 지금껏 사용해 오던 것들과 딱히 다를 바가 없어서 제외. 그리고 크기를 줄이기 위해 거의 표준과 비슷한 배열을 가진 텐키리스로 한정. 결국 '보글보글', '서걱서걱' 무접점 저소음을 중심으로 찾아봤다. 토프레 원조 리얼포스를 비롯하여 레오폴드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Gray Blue 색상이 가장 눈에 들어왔는데... 뭐... 온통 품절이다.(텐키리스 87키 기준) 고가 키보드 열풍은 18~19년도에 이미 절정에 오른 듯 했고, 인기있는 제품들은 그 때 다 품절된 듯 했다. 재입고 되도 순식간에 동나고. 난 또 이미 지난 유행을 따르는 중이고... 막상 사려는데 못사게 되니 이성을 점점 잃어갔다. 중고나라에서 중고마저 알아봤지만 물론 중고도 거의 없다. 글이 올라오면 순식간에 판매되는 듯. 중고나라까지 기웃거리는 나도 한심하지만 대체 저 키보드가 뭐라고, 기능이 추가된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기능없는 잡 키보드일 뿐인데.

 

 

아무튼 손에 꼽던 브랜드들을 뒤로 하고 적당한 가격선에서 더 찾아보다가 내 눈길을 끌은 제품이 바로 바밀로(Varmilo) VA87M RE 45g 저소음 적축이다. 45g 이 가장 보편적이라고 해서 선택했는데... 100점 만점에 100점 줬다. 일단 타건감이 유튜브에서 보고 내가 상상한 그 느낌과 너무 똑같았다. 키보드 표면이 맨들맨들 한 것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도 하고, 저소음 적축소리는 100점. 구매 후에 모든 키를 다 두드려 봤는데, 키보드의 중앙인 H 키를 스프링 튀어오르 듯이 떼면 기판 속 울림이 텅텅거리며 신경쓰여서 높이 조절도 해보고 패드도 깔아보고 했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소리가 사라졌다. 내가 익숙해 진건가? 지금도 세게 눌러보지만 고의적으로 튕기지 않는 한 신경 쓰이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암튼 그래서 100점.ㅋ 또 1kg 에 육박하는 키보드 무게로 흔들림이 없음.(다른 잡 옵션들은 소개 않겠음) 아무튼 16만원 정도로 100프로의 만족감을 느낀 나는, '비싼 키보드로 일을 하면 과연 일이 더 잘될 것인가?' 의 질문에 백퍼 그렇다 라고 대답하고 싶다. 아무래도 비싸고 좋은 키보드라는 생각에 자꾸 두드리고 싶은 마음?이 실제로 들었다. 이 보다 더 비싼 키보드를 사면 더 좋은 타건감과 더 일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또 한번의 결심을 한다.

 

 

키보드 끝판왕 토프레 리얼포스를 뒤져보다가 리얼포스 R2 TKL R2TLS-US5-BK 55g 저소음(TLSilence)을 선택했다. (막상 사고보니 바밀로와 너무 흡사한;) 과연 이 끝판왕 피보드는 두 배의 가격에 두 배의 기쁨을 줄 것인가? 결론은... 안타깝게도 아니올시다... 타건 5초 후에 바로 현타 왔다. 바밀로가 무접점 저소음 역할을 정말 충실히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보다 더 저렴한 제품 중에서도 훌륭한 제품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바밀로와의 타건감 차이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사실 무접점 저소음은 대부분 비슷할 거라고 본다. 단지 그 안에서의 '보글보글', '서걱서걱' 하는 소리가 아주 조금씩 다를 뿐이다. 만약 모든 키보드가 동일한 가격이라면 어떤 소리가 고급진 소리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의태어는 단지 개취일 뿐일테니. 그저 비싼 키보드에서 나오는 소리를 고급진 소리라고 느끼는 것일뿐. 물론 사용해 본 결과 리얼포스 키보드도 100% 마음에 든다. 바밀로의 매끈한 키 표면보다는 조금 까칠한 리얼포스의 키가 나에겐 더 맞고, 45g 보다는 55g 이 더 맞는 것 같다. 45g 을 써보니까 잘못 스치면 키 입력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55g 을 선택했는데, 키가 너무 무겁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한테는 55g 이 더 잘 맞는다. 같은 이유로 균등 모델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아참, 그리고 이 키보드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유독 백스페이스에서만 텅텅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진짜 귀에 거슬린다. 왜 이렇게 만든지는 모르겠는데 종특이라고들 하니 포기하고 금방 적응을 하긴 했다. 참고로 회사에서 이 키보드를 쓰고 있는데 대충 빨리 타이핑 하다가 백스페이스 눌러대던 습관이 많이 사라졌다.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백스페이스를 최대한 안누르려다 보니 타이핑의 속도가 늦어지고 정확도가 나아졌음.ㅋ 아 또 하나의 단점을 꼽자면 저 위에 덮개가 리얼포스꺼는 6만원인가 한다.ㅋㅋ 저건 만원짜리 노브랜드. 쫌 양아치긴 하다. 하나같이 내가 맘에 들어하는 것들은 왜 전부 일제인 것인가.ㅠ

 

이게 이 두 키보드를 한 달 동안 써본 후기이다. 하나는 회사에서 하나는 집에서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어쨌거나 단순히 비싸고 보글보글한 키보드를 써보고 싶었던 목표는 이렇게 가벼운 돈ㅈㄹ로 이루긴 했다. 키보드는 말 그대로 소모품이며 취향이다. 나에게 선물하기에 아까울 정도로 값비싼 것도 아니며 컴퓨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욱 지르기 좋은 소품 중 하나인 것 같다. 비싼거 사더라도 충분히 백분 다 활용할 수 있다면 만족하지 않겠는가. 이미 인터넷이나 유튜브에는 후기들이 넘쳐나서 우리같은 줍줍이들은 그저 줍기만 하면 된다. 가성비를 선택하느냐 브랜드를 선택하느냐 이 사이에서 선택만하면 될 뿐.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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