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산의 정상에서 설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경을 마주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일인가. 일단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추위인데다, 강원도 산골에 폭설이 내리면 설경이 예술이겠지만, 그 정도로 눈이 오면 눈길에 운전도 쉽지 않을뿐더러 고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내 의지 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소원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찾아오는 법. 겨울 산행 준비는 진작에 끝내놨었고 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상청에서 3일전 눈예보를 확인했고, 어제까지 강원도에 폭설경보. 그리고 기온도 0도 정도라 도로도 거의 얼지 않았을테고, cctv로 눈덮힌 설악산과 태백산은 찜 해놓았고... 하지만 이제 설악산은 무릎 때문에 못갈듯 하고, 아직 가보지 못한... 설경으로 유명한 태백산을 가기로 결정했다.
※ 코스
유일사주차장 - 주봉 장군봉 - 정상 천제단 - 망경사 - 유일사주차장
3월말 무등산에서 우연히 설경을 보고 욕심이 생겼는지, 설레서 잠을 못잤다. 새벽 3시반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잠이 안와서 그냥 TV나 보다가 밤 홀딱 새고 3시간짜리 운행을 했다. 마지막 한시간은 너무도 괴로웠음. 집에 올때도...; 왜 맨날 등산하기 전날엔 잠을 못자는지. 딱 어릴적 소풍가는 그 기분. 자 그럼 눈뽕 감상모드 시작.
주차장 영하 7도. 정상은 대충 영하 11도. 바람 때문에 체감은 영하 20도 정도? 빨리 내려가고 싶은 생각 밖에는 ㅜ. 그래도 보다시피 오늘 하루는 정말 예술이었다. 예술이란 말보다는 더 감성적인 말로 형용되어야 할 것 같다. 정말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 정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바람도 없었고...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구름 예보를 확인했지만 어짜피 안갈수도 없는거, 구름이라도 멋진 구름이길, 곰탕만은 아니길... 했는데 곰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환상적이었다.^^ 내 인생에 '눈' 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면 이 곳 태백산에서는 눈만 생각날 것 같다. 설경이 이렇게 감동적일 줄은...
다들 너무 쉽다고들 해서 방심하다가 초반에 설경을 보고 빨리 정상에 가고 싶은 마음에 오버 페이스가 됐다. 뭐 그래도 쉬운 코스라 별 문제는 없었지만ㅎ 가장 맘에 드는건 돌길이 거의 없다는거? 눈 때문에 약간 폭신한 느낌도 있어서 무릎에 충격 완화가 된 것 같기도 하고. 피곤했지만 너무 좋았던 산행.
이번주는 어디를 가볼까... 했는데, 일단 각종 뉴스에서 이번 주말이 설악산 절정이라고 해놨고, 날씨는 구름 약간에 미세먼지 약간 높음. 일단 주말이고 사람들은 많이 올 것이고, 미세먼지 때문에 뷰는 별로일 것이고... 해서 날씨와 미세먼지를 만족시켜줄 만한 곳을 찾다가 두타산으로 결정했다.
두타산은 동해시와 삼척시에 걸쳐 있는 1,353m 높이의 산이다. 두타는 불교 용어로 마음의 번뇌를 털어버리고자 엄격하게 불도를 닦는다는 좋은 뜻이 담겨있다. 승려들이 수행하기 좋은 심산유곡이란 뜻에서 두타산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스님들이 너무 좋은 곳에서 수행하시려는거 아닌지...
두타산엔 볼거리가 많다. 두타산 보다 더 유명한 무릉계곡, 2020년부터 개방된 베틀바위 구간, 미륵바위, 두타산성길, 마천루, 박달계곡, 용추폭포, 관음암, 게다가 동해바다도 내려다 보이는... 산에서 바다도 즐길 수 있는 명산이다. 베틀바위 때문인지 한국의 장가계라고도 불리운다. 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코스는 무릉계곡 관광지라고 불리고 천천히 둘러보면서 걷는다면 시간은 약 4시간 정도로 예상된다.
두타산 정상을 맛보는 방법은 북쪽의 무릉계곡 주차장에서 오르는 방법과 남쪽의 댓재에서 오르는 방법이 있는데, 무릉계곡 주차장에서 오르는 방법은 몇가지 뷰를 즐길 수 있지만 1100m 가 넘는 고도를 올라야 하고, 댓재코스는 뷰가 없지만 550m 정도의 고도만 올리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편도 6km 라 댓재코스도 쉬운 편은 아니다. 약간은 힘들겠지만 나는 무릉계곡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것을 목표로...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새벽에 도착하려고 무리하진 않았다. 다만 단풍철이므로 주차장이 모자랄 수는 있으니 일출시간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 판교 집에서 무릉계곡 주차장까지는 250km. 왕복 기름값만 5만원, 톨비 3만원. 입장료 2처넌. 출발할 때는 볼거리 전부 다 찾아보고 뽕을 뽑으려는게 목표였는데, 하산길에 지쳐서 용추폭포 방향으로는 쳐다도 안봤다.ㅋ 아무튼 새벽 4시에 출발해서 6시 반에 도착했다. 도착 전에 동해휴게소에 들러 동틀녁뷰 한방 찍었다. 다행히 주차장은 한산해 보였다. 잠시 입산 준비를 마치고 7시에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밝은 시간대에 입산하는 것도 참 오랜만~ㅎㅎ; 그냥 천천~히 걸었다. 요즘 척추 중립에 대해서 조금더 훈련했고 효과가 있을지도 궁금했고, 하산길에 무릎에 끼치는 영향도 테스트 할 겸...
일단 배틀바위까지는 내 앞길을 막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약 50분 정도를 올라 베틀바위에 도착하자마자 그 절경을 즐기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돋자리 깔아놓고 막걸리를 드시고 계시는 약 15명 가량의 중년 아재들... 보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맞아, 내가 이 꼴 보기 싫어서 사람들 다닐 시간에 안다녔었지. 아재들이라 잠도 없는지 일찍도 올라왔네. 베틀바위는 베틀을 연상시키는 모양은 아니다.ㅋ 난 베틀바위를 대충 감상하고 빨리 그 곳을 벗어났다. 미륵바위 앞에서는 중년의 부부를 사진 찍어 주려다가 내 폰을 떨어트려 액정이 깨졌다. 착한 마음으로 사진 찍어주려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리고 조금 더 걷다가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등산앱을 확인하며 대충 3시간 정도를 더 오를 생각을 하니,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민하지 말자. 미리 정한 목표대로 밀어 붙이자.' 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관광지 코스로 빠졌고, 나 홀로 적막한 정상 코스로 향했는데 어떤 블로그에서 본 것 처럼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 있을 만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낙엽이 많이 떨어져 쌓이면서 길을 감춰버린 듯한... 나도 두어번 경험해 버렸지만 당황하지 않고 등산앱을 따라 잘 찾아 올랐다. 고수가 앞서 가고 있었다면 훨씬 편했을텐데. 그래도 산 몇번 올라봤다고 멀~리 시야를 두면 어디가 길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는. 그리고 산악회나 동호회 같은데서 달아놓은 리본도 큰 도움이 되고. 아무튼 그렇게 정상까지 한걸음 한걸음 올랐다. 욕심내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허벅지 보다는 엉덩이에 무게를 실으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그게 아직 안된다. 그래도 앞으로 쏠린 무게중심을 뒤로 옮긴 것이 무릎이나 허리에 확실히 좋았다. 갈림길에서부터 약 1시간 반정도 올랐을 쯤부터 다리가 무적이 됐다. 몇번의 등산으로 알게된 사실 중 하나가 내 다리는 약 2시간쯤 오르막을 걸으며 고통을 느끼고 나면 다리게 감각이 없어지면서 최면이 걸린 것처럼 계속해서 오르막을 걷는다는... 남은 1시간 반을 그렇게 올랐다. 회사에서 가끔 답답함을 느낄 때 내 몸을 혹사시키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바로 그 상태가 되었다. 헬스장에서 스쿼트 100개 하면서 느끼는 고통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태. 숨은 차지만 뭔가 힘든 상태인데 나도 모르게 계속 앞으로 가고 있는, 고통스러운데 정상이 다가오니 즐거운? 아무튼 그렇게 정상에 올랐다...
정상까지 3시간 50분. 약 4시간이 걸렸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상당히 빡센거다. 대부분의 산들이 정상까지 3시간 안걸리는데 4시간 걸렸으니... 잠시 숨을 고르고, 인증샷 하나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어차피 다음 스케줄도 없으니 천천히 무릎을 보호하며 내려가자고 다짐했지만, 역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다.ㅎ; 아줌마 한명만 나를 재끼고 내려가는 걸 보면 금세 맨탈이 무너진다. 아줌마보다도 못한 무릎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하산 길에 등산객들과 마주할 때마다 묻는 질문이 있었다. '아직 많이 남았나요?', '얼마나 더가야 되나요?' 그럼 나는 '거의 다 왔습니다.', '30분 정도 가시면 됩니다.', '1시간쯤 더 가셔야해요.', '아직 많이 남으셨어요.' 라고 답했는데, 처음엔 응원이었지만 갈수록 뭐지 이 사람들. 그냥 아무 정보없이 오르는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3시간 코스에서 1시간 와놓고 많이 남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해주기가 참 난감하다. 거의 다 왔다고 할 수도 없고, 아직 많이 남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쭈욱 내려와 갈림길까지는 2시간 걸렸고, 무릎 통증 때문에 다른 곳을 더 둘러볼 여력이 없어서 곧장 주차장으로... 오늘은 무릎 보호대도 착용하지 않았고, 등산스틱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요즘 걸음걸이에 많이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도구에 의존하면 또 자세가 흐트러질 것 같아서 맨몸으로 도전해 봤다. 당분간은 무릎 보호대는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고 등산 스틱은 사용하더라도 아주 살짝살짝 도움 받는 정도로만 사용하려고 한다. 오후 2시 이전에 내려와서 동해 좀 들쑤시고 다녀보려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역시나 차가 좀 막혔다. 이래서 남들 다니는 시간에 안다니는데. 요즘은 등산보다 장시간 운전하는게 더 괴롭다. 후...
아무튼 오늘 두타산 방문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예보대로 날씨도 좋았고... 볼거리도 많았고... 정상 욕심만 없으면 다른 모든 컨텐츠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고, 볼거리는 주왕산에 못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것 같다. 정상까지도 거리는 좀 있지만 무섭거나 위험한 길 없이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좋은 길에서 1.8km 속도로 걸었다니...ㅋ 오늘의 혹은 한 다섯그룹 정도의 술판 벌린 아재들. 국립공원이 아니라서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건지, 내가 운좋게 지금껏 저런 그룹을 안만났던건지.
언제 다시 산행을 시작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남들과는 다른 무릎을 장착하고 굳이 등산을 계속 해야할까 라는 물음에 내 대답은 '아니오' 였다. 하지만 허벅지를 어딘가에 써야만 만족스러울 것 같은 느낌이라 결국은 다시 등산으로 돌아갔다. 하필이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추위에... 내 마음은 언제나 설악산이다. 하지만 1년전 이맘때 단풍구경하며 공룡능선 한번 건너보려다가 비 때문에 고생만 짤짤이 하고 다음날 허리 작살나고 1년을 쉬었다. 주말보다 사람이 적은 평일에 완벽한 단풍에 구름한점 없는 날이지만 나는 설악산 오색코스를 포기하고 그나마 일출뷰가 좋을 것 같은 계방산으로 향했다. 1년이나 쉬면서 몸 상태도 체크하기 전에 설악산은 무리지. 잘 시간도 없었고... 계방산은 언젠가 설경을 만끽하기 위해 남겨 놓았던 곳인데, 일출로 써버렸다.
출발 전날에 겨울산행을 좀 찾아봤다. 아직 10월 중순이긴 하지만 10월 말에 소백산 정상에서 꽁꽁 얼었던 생각에 미리 대비를 좀 했다. 좋은 구스다운 입지말고 솜패딩을 대충 입는 것에 공감, 핫팩하나 챙기고... 정상 기온은 약 영하 3도 예상, 근처 동네도 영하 3도... 산에서의 영하 3도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고고싱. 일단 10시반까지 야근하고 집에와 11시까지 짐싸고 취침. 새벽 2시에 일어나 짐챙겨서 2시반에 출발. 운두령 쉼터에 4시반 도착. 정비하고 5시에 출발했고, 6시 30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일출시간은 6시 37분. 너무나도 완벽한 계획...
간만에 어둠속을 헤치며 한걸음씩 조심조심 내딛었다. 겨울에는 땀이나지 않게 땀이나기 직전 옷을 벗고 춥기 직전 옷을 입는 것을 반복하라고 하는데 생각만해도 너무 번거로음... 그냥 땀나면 나는대로 꿋꿋이 올라갔다. 계방산이 조금 독특한 것은 운두령 자체가 높아서 그런가 시작하고 얼마 후부터 내리막이 꽤나 자주 나온다. 정상가는 길에 내리막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난이도로 보자면 쉬움. 느긋~하게 걸어서 1시간 반 소요됐고. 어쨌든 잠시 힘듦은 느낄 수 있을 정도? 지금까지 다른 산은 어떻게 올라갔었나~ 싶다.
간만에 산의 정상에 서서 탁 트인 사방을 내려다 보니,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상까지는 언제나 좋았지. 내려갈 때가 문제였고. 계방산도 설산으로만 생각해 왔는데 겨울을 제외하자면 봄/여름/가울 중에서는 최고로 멋진 날을 보게 된 것 같다. 연이어 구름한점 없는 날이었고, 갑작스레 영하권으로 날이 추워진 바람에 미세번지도 다 날아가고 이 모든게 다 계획된 시나리오라니...ㅋ 사방에 오대산과 설악산이 있지만 정확히 어디가 어딘지... 사진으로 설명이 되어 있어도 잘 모르겠음. 5시에 입산해서 약 4시간 동안 만난 사람은 아저씨 총 4명. 요즘 단풍철이라 어딜가나 줄을 서 있을텐데, 미안하지만 계방산의 인기는 이 정도인듯...
1년 동안 푹~쉬고 간만에 등반한 느낌은 어땠나요?
라고 물으신다면 한가지 빼고는 완벽했다고 해야 하나. 일출을 보기 위한 완벽한 시간 관리. 영하 5도를 버틸 수 있는 장비 착용. 아직까지는 꿀리지 않는 적당한 허벅지. 하지만 하산길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시작된 무릎 통증은 1년을 쉰다고 달라진게 없더라. 캄캄한 새벽 등반은 여전히 귀신 나올까 무섭고. 그래도 간만에 느낀 새벽 공기와 가쁜 숨을 느끼면서 흘린 땀. 이게 바로 등산 맛집이지.
단풍 시즌이 끝날 때까지 약 한달 정도(?)는 몇군데 더 다녀볼 예정이다. 현재 계획은 설악산의 적당한 단풍구경, 화암사 신선대에서의 울산바위 뷰, 민둥산의 억새밭, 두타산, 청량산, 속리산 단풍구경 정도. 그리고 겨울이 오면 눈꽃구경 태백산. 요즘 차만 타면 졸린데 이 먼곳들을 언제 다 돌아다닐꼬...
며칠전부터 공룡능선을 노려보고 있었다. 공룡능선을 완주하고 나면 두려울게 없을 것 같았다. 이번 주말이 대체휴가로 휴일이 하루 더 붙어서 쉬기에도 좋았지만 토요일에 비가 오는 바람에 하루 공쳤다. 그리고 난 구름이 잔뜩 낀 날에 무언가 새로운 풍경을 바라며 산행을 준비했다. 하체 컨디션도 잘 잡아놨고, 잠도 잘 잤다. 어짜피 날이 흐리니 일출은 어림없으므로 일찍 서두르지도 않았고 그저 페이스 조절만 잘해가기로 마음먹었다. 새벽 5시 20분쯤인가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내 앞에 대기열만 10대가 넘었다. 그 시간에 누가 빠져줘야 들어갈텐데 누가 그시간에 나갈꼬; 이게 바로 단풍시즌의 위력이겠지. 난 스피드하게 약간 먼곳에 대고 산행을 시작했다.
※ 코스
설악산소공원주차장 - 비선대 - 금강굴 - 마등령삼거리 - 원점회귀
입장료를 내고 깜깜한 소공원을 지나면서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를 들어보니 어제 비가 꽤 내리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질퍽한 진흙길과 미끄러운 돌 때문에 험난한 등반이 예상됐다. 비선대에는 입산전 재정비 하는 3~4 팀들이 모여있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구름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늘도 간혹 보였다. 언제나처럼 나홀로 쓸쓸히 금강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쯤부터 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먹구름이 심상치 않아 다시 기상청을 확인해보니 강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계속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기상청. 하필 오늘같은 날... 어짜피 신발과 바지는 진흙으로 걸레가 됐고, 비도 거의 흩날리는 수준이라 등반에 큰 무리는 없었지만 하산시 미끄러운 돌길들이 걱정됐다. 마등령삼거리까지 가는 내내 공룡능선을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마등령삼거리 도착했는데, 나처럼 고민하다가 되돌아 가는 팀들이 꽤 많았다. 일단 비에 젖은 바위길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그쪽으로는 뷰도 거의 없었다. 결국 난 깔끔하게 공룡능선을 포기했다.
마등령코스를 되돌아 보자면, 지난번에 무너미고개까지 3시간 걸렸는데 마등령삼거리까지 4시간 걸렸다는게 납득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만큼 난이도가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뷰는 정말 예술이다. 어짜피 공룡능선 보고 주구장창 올라가는거긴 하지만 그 사이 구름이 조금 받쳐 준다면 기가막힌 절경을 감상하면서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래서 약간 구름낀 날씨를 선택했던 것인데... 암튼 설악산은 역시 설악산이다. 최고의 절경! 그리고 단풍시즌에 여유있게 주차하고 싶다면 최소 새벽 5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한다는점... 오후1시 정도에는 위 사진처럼 소공원 3km 전방이 모두 주차장임. 도로 위에서 시간 버리고 싶지 않으면 아예 안가는게 상책.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산하는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단 비선대에서 마등령삼거리까지 3.5km 구간에 어찌됐든 3시간이 걸렸고 그대로 4.5km 짜리 공룡능선을 넘는다면 5시간은 더 걸릴듯 했다. 또 무너미고개에서 주차장까지 대충 3시간. 마등령삼거리에서 발걸음을 돌리기 전에 공룡능선을 한참을 쳐다봤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왔는데도 이렇게 물러날 수 밖에 없음에 이번 생에는 저 능선을 건너지 못할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자괴감을 고이 가지고 하산을 시작했고 남은 체력을 소진하느라 거의 뛰어 내려왔다. 무릎이 멀쩡해서 뛰어 내려온 건 아니고 아프지만 견딜만 해서 뛰어 내려왔다. 젖은 바위들 때문에 몇번을 움찔움찔 했지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내려왔다. 무사한줄 알았는데 다음날 허리가 아주 작살이 나있었다. 무릎은 반작살. 등산을 정말 접어야 할랑가보다. 새로 산 등산화랑 등산스틱은 아직 개봉도 않했는데... 간만에 또 제대로 삐졌다. 조용히 헬스나 해야할 팔자인가... 유유...
상원사 주차장에서 비로봉 까지는 1시간 40분 코스로 예상했지만 새벽 산행이니 넉넉하게 2시간 코스로 보고 6시 23분 일출시간에 맞춰 갔다. 오대산 정도면 새벽에 등산객들이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음... 한창 후덜덜하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상원사를 지나자마자부터 적멸보궁까지 연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개꿀. 적멸보궁에 도착했을 때가 5시 경이었는데 그 시간에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 날 무슨 행사가 있었던 건지, 매일 하는 행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새벽에 참 대단한 분들. 그 뒤로 40분 가량을 어둠, 외로움과 싸우며 비로봉에 도착했다. 새벽 산행 깨알 팁이라면 작게 음악을 틀고 등반하면 조금은 덜 무서움. 유튜브 보면서 오르면 훨씬 덜 무섭지만... 다칠 위험이 있음.
오늘은 일출 30분 전에 도착했다. 언제나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긴 시간이 가장 추움.ㅜ 뷰도 산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어 괜츈, 하지만 상왕봉, 두로령에서의 특별한 뷰는 따로 없으니 비로봉까지만 보고 3시간 코스로 끊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난이도는 적멸보궁까지는 잘 다듬어진 계단으로 되어 있어 오르기가 아주 수월하고, 비로봉까지는 계속된 오르막이지만 시간상으로 40분 거리라 그닥 힘든지는 않다. 그 뒤로 상왕봉, 두로령, 상원사주차장 까지 거리는 좀 있지만 가파르지 않은 평지가 90% 정도로 될 정도로 난이도가 낮다.
오대산에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나, 비로봉 빼고는 딱히 뷰 포인트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 흔한 바위도 하나 없고...ㅎ 나무들이 죄다 가리고 있어서 깔끔한 능선들을 찍기가 어려웠음. 단풍 1주차라 볼거리는 적었지만 다음주에는 더 멋있을 거고 그 다음주는 더더 그 다음주는 더더더 멋있겠지. 날씨와 몸뚱이가 도와줄지... 집으로 출발한 시간이 한 9시 반쯤 됐었는데 상원사 주차장과 월정사 주차장에 거의 만차된 걸 보니 역시 핫플레이스란 생각이 들긴 했다. 주차 스트레스 안받고 차 막히지 않는 유일한 방법. 남들보다 더 일찍 서두르는 것.ㅋㅋ 또 하나의 꿀팁, 새벽에 도착하면 주차비랑 입장료가 무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