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고우영 삼국지'에 해당하는 글 20건


고우영 삼국지를 읽고, 아니 만화니까 보았다고 해야하나. 


고우영 삼국지는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만화가 고우영님이 일간스포츠 신문에서 연재한 삼국지연의 만화이다. 국내에 원전 연의 번역본이 존재하지 않던 때에 나온 작품이라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를 기반으로 하였다. 당시 거친 표현들이 많아 심의에 걸려 원본이 많이 훼손됐었다는 것을 2001년 딴지일보에서 밝혀내고 훼손된 원본을 모두 복원해 책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삼국지 만화들 중에 가장 평이 좋다고 해서 먼저 보게 됐고 3개월 전만 해도 인터넷(카카오페이지) 으로 컬러판을 볼 수 있었는데 며칠 안되서 서비스가 중단됐다 ㅡ.ㅡ; 


결국 흑백판으로 보게 됐는데 아무튼 소감은... 재미있다. 아무래도 만화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훑고 넘길 수 있어서 빠르게 완독할 수 있다. 하루 이틀 날잡으면 다 볼 수 있을 정도?(나는 거의 3달을 봤지만 ㅋㅋ) 장점이라면 삼국지연의의 스토리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깊이는 없다.ㅎ 대략적인 사건 소개식의 전개라 삼국지연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 정도? 마지막엔 제갈양이 죽으면 서둘러서 끝맺음을 한다. 그리고 필요치 않은 19금 스토리가 꽤나 있으니 그런 부분은 알아서 장/단점으로 삼으시길.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고우영님이 재해석한 부분들에 대하여 삼국지연의와 다르다고 따질 필요는 없다. 내 점수는요... 10점 만점에 8점~


고우영 삼국지를 보고 나니, 삼국지연의의 시작이었던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정사삼국지를 비교하고 싶어졌다. 마음은 그러한데 언제나 볼 수 있을지...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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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양의 출사표


유선을 보필하게 된 제갈양은 우선 동오과 동맹을 맺고 조운, 위연 등 50만 대군과 함께 남만 정벌에 나선다. 7번 풀어주고 7번을 사로잡는 칠종칠금으로 맹획에게 진심으로 항복을 받게 되어 남만의 드넓은 지역을 취하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강에서 죽은 영혼을 달래는 음식으로 만두를 만들게 하여 진혼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 사이 조비는 아들 조예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게 되고 조진, 조휴, 진군, 사마의 등이 그를 보필하였지만 서량에 나간 사마의를 의심하고 모함하여 관직을 박탈하자 제갈양은 중원을 쳐 천하통일을 계획한다. 빼어난 문장으로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담긴 출사표를 쓰고 조운을 선봉으로 한 30만 대군과 함께 중원을 밀고 나갔다. 관우에게 응원군을 보내지 않고 조비에게로 갔던 맹달도 귀순하지만 복직한 사마의에게 기습을 받고 죽게된다. 결전지 가정을 두고 마속이 출전하지만 제갈양의 지시를 어기고 사마의의 20만 대군에게 포위당해 겨우 탈출하지만 군법대로 마속을 사형에 처한다.

 


오장원 전투


다시 손권의 육손과 조예의 조휴가 전투를 시작하게 되고 조휴는 육손에게 당하여 죽게 된다. 손권이 위와의 전투를 승리함을 알리며 촉에 동맹을 제안하자 제갈양은 중원을 통일하고 낙양에 입성하기 위해 후출사표를 쓰지만 조운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동오에 동맹군을 요청하지만 육손이 보내지 않자 보란듯이 용병술로 위와의 전투에서 승승장구, 연전연승 하여 오장원까지 밀고 나가지만 장포, 관흥이 죽게 되고 제갈양이 황제가 되려고 한다는 헛소문을 들은 유선이 불러들이자 혼절하고 만다. 49명의 보초를 세우고 생명의 등불을 켜서 7일간 등불을 꺼트리지 않으면 수명이 15년 연장된다는 의식을 행하며 기도하지만, 6일째 되는 날 위군의 기습을 알리려고 온 위연이 등을 밟아 불이 꺼트리게 되고 곧 제갈양의 병세는 악화되서 죽고 만다. 결국 삼국 통일을 이룩한 것은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되고 그 나라의 이름은 진나라가 된다.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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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황제 조비


조조에게는 조비, 조창, 조식, 조웅 등 아들 넷이 있었는데 왕이 된 조비는 형제들의 왕위 찬탈을 겁내 견제가 심했으며 그런 형이 두려워 조웅은 자결했고, 칠보시로 유명한 조식은 옥에 갖혔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다. 손권에게서 풀려났던 우금은 조비에게 조조의 묘지기를 명 받았는데 묘전에 미리 그려놓은 그림(관우가 싸움에서 이기고 방덕이 분노하며 우금이 항복하는 그림)을 보고는 부끄럽고 분한 마음에 병이 나 죽었다. 개국공신 하후돈도 복황후와 동귀비의 망령을 보고 병을 얻어 곧 죽었다. 화흠, 이복, 허저, 가후, 유엽, 조홍, 조휴 등이 모여 헌제를 끌어내려 한나라를 없애고 조비를 왕으로 앉혀 위나라를 세울 계획을 세우게 되고, 곧 헌제를 겁박하여 선양받는 식으로 하여 조비는 위 황제가 되고 건안 25년에 4백년 한나라 역사는 끝이 난다.



이릉 대전


조비의 대관식이 있은 뒤에 제갈양 이하 모든 군신들은 한실의 정통을 잇기 위해 여러차례 거절하는 유비를 황제로 앉히게 되고, 제갈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가장 먼저 관우의 복수를 위해 장비, 황충, 조운 등 75만의 대군과 함께 동오를 칠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사흘 뒤 강주에서 합류하기로 한 장비가 낭중에서 부하들에게 살해당한다. 결국 아우들을 모두 잃은 유비는 제갈양에게 성도을 맡기고 그의 아들들인 장포, 관흥 등과 출정하게 되고 동오에서 승승장구하게 되지만, 황충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여 황충은 무모하게 적군 깊숙히 돌진하게 되고 마충에게 화살을 맞아 죽는다. 손권은 조비에게 도움 요청을 거절당하자 유비에게 제갈근도 보내보고, 장비를 죽이고 도망온 범강, 장달도 보내보지만 유비는 군대를 물리지 않았다. 결국 어린 육손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화공으로 유비군을 물리치게 되고 유비는 백제성에서 병이 들어 제갈양에게 아들 유선을 맡기고 63세의 나이로 죽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손부인도 바다에 투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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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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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 전투


조조는 왕이 된 유비를 치려하자 사마의가 만총을 동오로 보내 함께 유비군을 치고 형주를 나눠갖자는 제안을 한다. 제갈근은 오히려 유비와 손을 잡고 조조를 토벌해야 대의명분이 선다며 직접 관우를 만나 관우의 딸과 손권의 아들의 혼인 얘기를 꺼내지만 관우가 강하게 반대하자 손권은 조조군에게 한중을 공격하도록 하고 손권군은 형주로 출병한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양은 관우를 오호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조인이 지키는 번성을 먼저 공격해 기선제압하도록 명한다. 관우가 봉화대를 세워 동오의 공격에 대비하게 하고는 번성으로 출병하여 조인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조조는 우금과 방덕을 보내 돕게 하였지만 관우에게 생포되어 우금은 포로가 되고 방덕은 투항을 거부하다가 그 자리에서 참수된다. 계속해서 번성을 공격하던 관우는 조인의 독화살을 맞게 되고 고열에 시달리지만 명의 화타가 나타나 살을 도려내고 뼈를 긁어내며 치료를 하는데 관우는 의연하게 바둑을 두며 고통을 참았다고 한다. 조조는 동오에 사람을 보내어 형주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형주로 정찰을 온 도독 여몽이 봉화대를 보고 공격할 방법이 없자 병이 난다. 여몽을 후송하고 그 자리를 어린 육손이 자리하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관우는 형주에 남은 병령 2만 중 5천만 남기고 모두 번성 전투에 합류하도록 한다. 형주의 방어가 약해지자 여몽이 병석에서 일어나 한당, 장흠, 주연, 번장, 주태, 서성, 정봉, 길무 등과 함께 형주로 출병하여 봉화대를 기습하고 형주를 취하게 된다. 여몽은 갖혀있던 우금을 풀어주고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관우의 식솔들을 보호한다. 이 소식을 들은 관우는 형주로 향하지만 여러차례 고전하게 되고 요화를 맹달이 있는 상용으로 보내 3만의 병력을 지원받으려 하지만 맹달에게 병력 요청을 거절당한다. 관우는 그 사이 작고 단단한 맥성에서 방어하고 있었는데 제갈근이 찾아와 투항을 권하였지만 거절한다. 이내 관우와 그 아들 관평 그리고 30여명의 부하들이 몰래 탈출하려 하지만 매복한 여몽의 군사들에게 포박된다. 손권의 투항 의사를 여러 차례 거절하던 관우는 58세의 나이에 처형되었고 관우의 혼령에 시달리던 여몽은 곧 병들어 달포 뒤에 죽는다. 그 사이 요화의 지원 요청을 받게 된 유비는 맥성으로 향하던 길에 관우의 죽음을 알게 되고, 관우의 목을 자른 손권은 유비의 화살이 조조군에 향하게 하기 위해 조조에게 관우의 목을 보낸다. 이를 눈치챈 조조는 관우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뤄준다. 관우가 죽고나서 조조 역시 매일 밤 악몽을 꾸고 두통으로 괴로워하자 명의 화타를 모셔왔는데 마취를 하려하자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화타를 옥에 가두고 고문을 해 죽게한다. 죽기전 의술을 기록한 청낭서를 옥졸에게 맡겼으나 옥졸의 아내가 남편도 화타처럼 죽을까 두려워 청낭서를 태워버린다. 계속해서 병마에 시달리던 조조는 맏아들 조비에게 대업을 물려주고 자기 무덤이 파헤쳐질게 두려워 72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라는 말을 남긴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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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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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을 얻은 조조


동오의 손권은 유비가 서천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형주를 돌려받기 위해 제갈양의 형 제갈근의 식솔을 거짓 투옥 시키고 제갈근을 형주로 보내 이 사실을 알리게 한다. 제갈양이 이 소식을 듣고 계략을 세워 우선 형주의 장사, 영릉, 계양 세 군을 돌려준다고 하지만 제갈근이 형주에 가 관우에게 세 군을 달라하니 관우는 주지 않고 제갈근을 쫒아냈다. 조조는 서서히 왕위 찬탈의사를 비추기 시작했고 구석을 받으려고 하였는데 순욱이 맹렬히 반대하여 둘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조조가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내자 순욱은 독주를 마시고 자살한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순유 역시 병으로 죽고 만다. 조조의 거만함에 복황후는 아버지 복완에게 밀서를 보내지만 이 또한 발각되어 복완복황후도 사형을 당한다. 조조는 자신의 딸을 천자와 혼인시키고는 조국구가 된다. 장로가 한중을 지키고 있었는데 유비를 고립시키기 위해 조조가 장로를 공격한다. 양평관을 함락시키고는 장로가 있는 남정성으로 향하지만 그곳에 머무르던 방덕에게 패한다. 조조는 사람을 보내 한중의 양송이란 자에게 재물을 보내 장로와 방덕을 이간질 시켜 방덕은 궁지에 몰리게 되고 결국 조조에게 붙잡히자 항복하여 장로 역시 조조에게 한중을 넘긴다. 조조가 한중을 차지하고 촉이 위태해지자 제갈양은 이적을 동오로 보내 합비를 공격해 주면 한중을 빼앗고 형주의 삼군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손권은 그에 응하고 조조군과 한참을 싸우지만 양방 모두 병력손실만 있을뿐 진전이 없어 휴전한다.



한중왕 유비


조조와 그의 심복들은 천자를 끌어내리고 조조는 건안 21년 5월 결국 왕위에 올랐다. 업에 궁궐을 세워 조조가 왕위에 오르자 조조의 동향인인 좌자가 나타나 "유비에게 길을 양보하라" 는 말을 하고 조조의 죽음을 예언한 뒤 사라진다. 또 조조가 왕위에 오른 것에 불만을 품은 후한의 대신들 경기, 위황과 일전에 조조를 암살에 실패하고 죽은 길평의 두 아들 길막, 길목 형제, 금위 등이 허창을 지키고 있던 왕필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지만 조휴, 하후돈, 하후연 등에 의해 모두 죽게되고 조조는 의심가는 대신들 300명까지 모조리 죽인 뒤 자기 사람들로 자리를 채워 넣는다. 궁안을 안정화 시키고 조홍, 장합, 하후연에게는 서촉지역을 공격하게 한다. 장합과 맞붙은 장비는 술에 취한 것처럼 위장하여 장합을 격파하고 장합이 재정비하여 가맹관으로 향하자 노장 황충과 엄안이 나서 다시 장합을 격파한다. 장합이 다시 재정비하여 한호와 함께 출정하는데 황충이 교병지계로 다시 격파하여 한호, 하후덕 등의 목을 베고 병참기지인 천탕산을 점령한다. 모사 법정이 유비에게 한중을 취할 것을 권하자 유비는 한중에 조운을 선봉으로 한 10만 대군과 함께 출병한다. 이에 조조도 40만 정예군과 전장에 나서지만 보급이 끊인 조조군은 하후연의 죽음과 함께 연패를 하게 되고 조조의 심중을 알아차린 양수가 퇴각 명령을 하였는데 심중을 알아차린 죄로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고 조조는 결국 철수한다. 한중을 차지하게 된 유비는 제갈양의 청으로 건안 24년(서기 220년) 한중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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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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