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에 해당하는 글 5건

 

8.15 광복 이후 1945~1949년 주요 정당은 한민당 중심의 우파와 남로당 중심의 좌파, 그리고 중도파가 있었다.

  • 한민당 (한국민주당 - 송진우, 김성수, 장덕수, 조병옥, 윤보선)
  • 남로당 (남조선로동당 - 허헌, 박헌영)
  • 중도파 (여운형, 안재홍, 김규식)

 

남로당(남조선로동당: Workers Party of South Korea)은 1946년 11월 23일 서울에서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의 합당으로 결성된 공산주의정당이며 미군정하에서 불법단체가 아닌 합법단체였다.
남한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계속하다가 이승만의 단독 정부 수립이 예고되자 이에 반발하게 된다.
1948년 8월 15일 남한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9월 9일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다.
1949년 6월 남로당과 북로당이 비밀합당하여 조선로동당이 되고 남로당은 그대로 남한에서 각종 테러, 게릴라 전등을 일으킨다.
그 배경속에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으로 제주 4.3사건, 여순 사건, 남부군 사건 등이 있다.
여순사건 이후, 남한 내에서는 남로당의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고, 이 때 목숨부지한 몇 안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박정희이다. (남로당 조직원 정보를 전부 폭로하여 살아남았다고 함)
1955년 남로당은 김일성의 숙청 대상이 되었다.

 

2·7 파업 사건
1948년 5월로 예정된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에 앞서 이승만 계열 외의 파벌들이 대부분 '단선단정'에 대하여 반대를 하였고, 이 때 남로당과 민주주의민족전선은 1948년 2월 7일을 기해 전국적인 대규모 파업을 일으키며 일부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일으켰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노동자들이 통신과 운송설비의 가동을 중지)

 

제주 4·3 사건
2·7사건 두달 후 김달삼 등 남로당은 단독정부 수립운동 반대, 통일정부 결성, 친일파 척결 등을 내세우며 제주도 내의 좌익세력을 결집하면서 좌우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다.

 

여수·순천 14연대 사건
1948년 10월 19일 국군 14연대의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를 비롯한 일련의 남로당 계열 장교들이 주동하여 2,000여 명의 사병이 전라남도 여수군(현재 여수시)에서 봉기함으로 인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남동부지역의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한 사건.

 

  1. 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만62세)는 김재규, 차지철(대통령 경호실장), 김계원(대통령 비서실장), 심수봉(가수), 신재순(모델)과 연회를 열음.
  2. 김재규는 김계원에게 살해 계획을 알림.
  3. 저녁 7시 30분경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 박흥주와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에게 박정희 살해 계획을 알리고 때맞춰 경호/경비원들 죽이라고 지시.
  4. 저녁 7시 40분경 김재규는 박정희와 차지철에게 총을 쏴 살해.
  5. 김재규는 '내란목적살인'이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1980년 5월 24일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짐.

 

 

김재규의 말 :

"내가 (거사를) 안 하면 틀림없이 부마항쟁이 5대 도시로 확대돼서 4·19보다 더 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승만은 물러날 줄 알았지만 박정희는 절대 물러날 성격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 300만 명을 죽였는데 우리가 100만~200만 명 못 죽이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 암살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광주가 아닌 부마(부산,마산)에서 일어나 더 큰 희생자들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설이 있음. 결국 계는 전두환이 탐.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소장 박정희, 중령 김종필을 비롯한 육사 일부 주도세력이 장면 내각의 무능력과 사회의 혼란(반공·친미·구악 일소·경제 재건)을 명분으로 장교 250여 명 및 부사관과 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도하하여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 제2공화국을 무력으로 전복한 쿠데타이다.

 

  • 1961.5.16 군사정변. 청와대 장악.
  • 1961.5.16 군사혁명위원회 설치(의장:장도영, 부의장:박정희) 군정통치 시작(입법·사법·행정 3권 장악)
  • 1961.5.18 장면 총리 하야 선언
  • 1961.5.18 군사혁명위원회 -> 국가재건최고회의 개칭
  • 1961.6.10 중앙정보부 발족
  • 1961.7.3 장도영 의장직 추방. 의장->박정희
  • 1963.10.15 5대 대통령 박정희 당선
  • 1963.12.27 제3공화국 수립. 국가재건최고회의 해체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

 

유신정권 세력들이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려는 시민들을 내란죄로 몰아 살해한 사건.

· 1964년 - 북의 지령을 받아 인혁당(인민혁명당)을 결성하여 국가 사변을 기획했다며 1차 인혁당 사건의 주인공들을 잡아들임.
· 1974년 -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을 중심으로 유신체제에 반대시위가 거세지자,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을 불순 반정부세력으로 규정하고 2차 인혁당 사건(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주인공들을 잡아들임.
· 1975년 - 8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18시간 만에 기습적으로 사형 집행.
· 2002년 -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인혁당 사건이 중앙정보부 조작 사건이라고 발표.
· 2007년 - 서울 중앙지법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8인에 대하여 무죄와 국가배상 판결.

박정희 따님인 박근혜는 계속 합리화를 하고 있다고 함.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

MBC 지분

History (Korea)/1945- 2012. 11. 1. 15:27

 

MBC 지분은 현재 방문진(70%)과 정수장학회(30%)로 나뉘어져 있음.

· 1961년 - 김지태가 한국문화방송 개국.
· 1962년 - 김지태는 516쿠데타 이후 부정축재자로 몰림.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인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장)의 지시로 한국문화방송을 비롯한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부일장학회 등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강제로 쓰고 중앙정보부에 헌납. 아니 빼앗겼다고 함. 5일뒤 그 돈으로 516장학회(정수장학회) 설립.
· 1987년 - 민주화 이후 주식 70%를 국회에서 제정한 공익재단인 방송문화진흥회가 보유. 나머지는 30%는 그대로 정수장학회가 보유.
· 2012년 - 정수장학회 현이사장 최필립이 MBC 지분 몰래 팔려다 걸림.

팔아서 박근혜표 반값등록금 지원을 하여 대선때 한표라도 더 얻으려고 했다고 함.
그리고 정수장학회(박희/육영) 전이사장인 박근혜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함.

MBC사장 < 방송문화진흥회 < 방송통신위원회 < 대통령
MBC는 현재 MB Corporation이 되었음.

* 정수장학회와 비슷한 사례로 1960년대에 대구대학 청구대학을 나라에 헌납하게 하고 두 대학을 통합하여 만든 영남대학교가 있음.
박정희가 교주가 되고 후에 박근혜도 이사가 됨. 그러나 이들의 출연 자금은 없었음.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