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꽃 구경할 곳들 중 하나. 구례산수유마을. 전국 산수유의 70%는 여기 있다는... 남자한테 좋다는데 쓸데는 없다는...
토요일이라 사람들 바글바글하면 주차할 곳도 없겠지 싶어 이른 아침에 가려다가, 이슬비가 내린다고 하여 촉을 믿고 슬~슬~ 출발했다. 티맵에 [구례산수유마을]을 검색했고 운전하다 보면 여기가 구례구나 싶을 정도로 산밑 언덕 너머에 산수유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구경을 시작해야 할지 몰랐지만, 산수유사랑공원 사거리쯔음부터 길안내 봉사자 분들이 길을 안내해 주신다. 코로나 때문에 못들어가게 막는줄 알았는데, 교통 혼잡을 위해 일방통행 길로 안내해 주신거였음. 그렇게 안내를 따라 오르다 보면 북카페 주차장이 있는데 그곳에 주차하고 한바퀴 휘이~ 거닐면 된다. 바로 위에 산유정 정자가 있다.(like 전망대?) 티맵 목적지 바로 직전임.
이렇게 많은 산수유 밭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와보고 싶었고... 살짝 이른 시기인 것 같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 구경 잘하고 산수유사랑공원도 휘이~ 한바퀴 돌았다. 비 덕분에 빠른 마무으리~ 나 처럼 첫 방문이라면 원하는 뷰가 있는 마을을 미리 검색해 보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월 말에 사라지는 휴가 5일을 써야하는 바람에 간만에 휴가 계획을 세워야 했다. 주말까지 하면 총 9일인데... 코로나 때문에 해외는 제외. 가까운 곳은 주말에도 갈 수 있으니 제외. 하니 그나마 먼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셋이 남았다. 경상도랑 제주도는 아무래도 관광지가 많은 편이니 걷고, 산책하고, 구경하고... 이걸 혼자하기에는 조금... 몇 번 해보기도 했고... 해서 제외. 하고나니 전라도 하나 남았다. 멀어서 한 군데만 다녀오기엔 기름값 아까운 곳들을 쓸고 오겠다는 일념하에 컨셉은 정해졌다. 자연과 함께 하는 여행? ㅋㅋ 조금더 구체적으로는 등산과 풍경, 꽃축제 위주로 8박 9일을 돌아보기로 했는데 마지막 토요일과 일요일의 기상이 비로 예정되어 있어서 일단 최소 6박으로 정하고 일정을 짜봤다.
초록창에서 '가볼만한곳' 을 검색하면 지역별로 인기 순위의 리스트를 볼 수 있다. 그 중에 내가 갈 전라도 부근의 시/군 별 리스트에 식당, 숙소, 등산로, 코스 정하는데 까지 꼬박 며칠 걸렸다. 코스도 물론 최단거리 위주이지만 아침에 꼭 봐야할 곳, 점심에 봐도 괜찮은 곳, 저녁에 봐야할 곳, 날씨가 맑아야 할 곳, 구름이 있어도 되는 곳, 비가 와도 되는 곳 등을 고려해서 정했고, 등산로는 통제구간 체크하고 되도록 짧은 코스이면서 볼 게 많은, 주차장도 일찍 도착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등산로에 가까운 알려지지 않은 주차장, 숙소는 걸어서 식당에서 지역 특산물과 함께 술한잔 할 수 있는 곳으로, 또 정상 영업중인지 확인, 개화 상태는 3월말에 접어드는 이 순간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고 나니 일정 짜는데만 며칠 걸려 안걸려? 최소 6박을 가려니 챙길 것도 많았다. 등산마다 갈아입을 옷들, 물, 프로틴, 비타민, 비상약, 진통제, 침낭, 핫팩에 손톱깍기 까지.
여느때 새벽 등산갈 때처럼 이것저것 준비하다가 결국 잠은 3시간 자고 휴가는 시작됐다. 아래는 휴가 맵과 일정표이다.
남쪽 지방 진달래 산들 쏵다 다녀오려고 했는데 황매산, 천주산, 화왕산은 아직 덜 핀 바람에, 토/일요일에 비가 예보되어 있기도 하고, 해서 6박 7일로 자연과 함께 하는 극기훈련(?)을 마쳤다. 혼자 6박 동안 계획했던 코스들을 모두 돌고 나니 뿌듯하다. 비오고 흐리고 강풍까지 있었지만 모든 일정을 소화 했으니 운도 많이 따른 듯 하다. 어느 한 곳도 아쉬운 곳이 없었고, 모든 순간이 감동이었다. 목포 홍어삼합, 벌교 꼬막, 여수 꽃게장 등의 현지 먹거리까지. 일정의 저 하루하루가 주말에 시간내서 하나씩 다녀와야 하는 코스인데 그렇게 일곱번 왔다갔다 하면 기름값만 아깝지. 그래서 언젠가 한번에 다 돌아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왔네. 가장 힘들었던건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한 숙소 선정이었다. 방역이 그래도 잘 갖춰진 호텔급들은 혼자 이용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 나에게는 너무 낭비였고, 그래서 후미진 찜질방 위주로 전전하다가 남해에서는 시/군 전체에 찜질방 휴업령이 떨어져서 모텔도 이용하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차박할 준비까지 하고 침낭도 챙겼으나 등산한 나에게는 샤워가 꼭 필요했다.ㅜ 숙박이야 어디서든 씻고 싸게 잘 수만 있는 곳으로 생각했으니까 이 정도면 선방한셈. 식사도 아침 점심은 챙겨간 바나나와 찐게란으로 잘 때웠고. 등산시 진통제 먹고 파스 무지하게 바르고 다녔는데 크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음. 일부러 적당한 코스로만 다닌건데... 후유증으로는 7일 동안 9등산을 해서 그런지, 피곤할 때 주로 생기던 포진들이 지금 팔에 점점 퍼져가고 있고 발목과 종아리가 많이 부었다. 참고로 난 청바지 핏 때문에 종아리 운동은 1도 안하는데 이번 9등산으로 펌핑이 제대로 됐다. 느낌 완전 좋은데 이번주 안에 다시 다 빠지겠지.
내일부터는 밀린 일들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저 저 코스들을 언제 다 블로깅 할지가 걱정될 뿐...
2015년 하계 휴가. 휴가 내자마자 신규 프로젝트 시작되서 결제난 걸 안갈 수도 없고, 집에만 있자니 집에 있을꺼면 출근하라고 할 것 같고, 혼자 딱히 가고 싶은데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해서 혼자만 갈 수 밖에 없는 곳을 생각해 보다가 한라산 등반을 결정했다. 이왕 가는거 백록담 찍고 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코스 공부를 했고 성판악으로 올라가서 관음사로 내려오고 싶었지만, 현재 관음사 코스는 정상 등반이 불가능하여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코스는 성판악 코스가 유일하다는... 경치는 관음사 코스가 좋다던데...
등반하는 날짜의 제주도 날씨는 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성판악 코스는 비가 와도 등반이 가능하다는 글들을 보고 힘을 내어 등반 계획을 강행했다. 등반 전날 저녁 제주도에 도착해서 렌트하고 이른 아침의 여정을 위해 숙면을 취했다. 기상해서 보니 예정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50cc짜리 스쿠터와 우비로 빗속을 가로지르며 성판악 입구에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초코바 한개와 이온음료를 사들고 백팩1개와 클로스백1개를 짊어지고 우비를 재정비 하고 등반을 시작했다.
등반 시작 시간은 오전 8시.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등반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외국인도 꽤 있었고, 등산 장비로 무장한 사람들 보다는 나처럼 간편한 차림이 더 많았다. 등반에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빠른 걸음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한 30분쯤 지날 때부터 내 몸은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됐고 속밭샘을 지나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내 다리는 내 다리가 아닌 듯 했다. 그냥 이제 마지막 코스라는 생각 만으로 버텼다. 잦은 폭우로 많은 등산객들이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지만 남양주 날다람쥐는 빨리 정상 찍고 내려가겠다는 생각에 쉬지도 않았다. 그 곳에서 정상까지의 오르막은 진짜 빡쎘다. 중간중간 사진 찍느라 머뭇거린게 그나마 다리에 충전이 됐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바람은 훨씬 더 거세졌고, 비를 그나마 가려주던 나무도 사라져갔다. 구상나무가 맞는지 죽은건지 산건지 모를 나무들이 난간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쯤을 올라가 정상을 마주했고, 백록담은 안개에 가려 힌 사슴도 물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내 예상에 없던 내용인데... 나중에 또 와야 하는건가 ㅜㅜ 이 한라산 정상의 기운을 받아 가족들한테 영상 편지라도 찍고 싶었는데 비바람에 핸드폰 고장날까봐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땀도 식고 거센 바람에 너무 추워서 인증샷만 찍고 후다닥 내려왔다. 얼마나 후다닥 내려왔냐면... 하산 시간은 2시간 20분 걸렸다. 등산 시간은 2시간 40분. 딱 5시간 걸렸다. 등산 이렇게 하는거 아닌데... 등산을 즐기는게 아니라 운동하고 온 느낌...; 한라산 홈페이지에 보면 성판악 코스는 정상까지 9.6km 이고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 있다. ㅋㅋ 내려오는 길에 사라오름 전망대에 잠깐 들리려고 했는데, 역시나 안개만 보일꺼 같아 패스했다...
한 10년만인가... 등산 소감을 써보자면, 허벅지 운동만 하고 종아리 운동을 등한시 한 벌을 받은 느낌이다. 한번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쉽다는 말이 과연 등산에도 적용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백록담을 위해 삼고초려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음 한 켠으로는 여기 왜 왔나 하는 생각도 간혹 들었으니 말이다. 성판악 코스는 그래도 일반인이 등반할 수 있도록 길이 잘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비 때문에 돌맹이들이 미끄러워서 발목에 무리가 많이 오긴 했다. 나름 튼튼한 조단을 꽉 조여매고 갔는데도 등반 얼마 후 밑창이 밥달라고 입을 벌리더니 하산길에 결국 입이 찢어지고 말았다. 햇볕이 따가워서 헉헉 대는 것 보다는 시원하게 비가 내려 준 것이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오를 때는 백록담을 본다는 부푼 마음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올라갔고, 내려올 때는 정말 아무 재미없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이 더 길게 느껴졌다.
주차장에 다시 돌아왔을 때의 시간이 오후 1시 30분. 일정이 일찍 끝난 바람에 관음사 구경까지 마저 하고 왔다. 뿌듯하긴 했지만, 혼자서 1박 이상의 여행은 지양하기로 결심했다. 타지에서의 밤은 너무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