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정 하륜(1348년 1월 22일 ~ 1416년 11월 24일)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이다.
태종의 최측근 인사이자 책사의 한 사람으로, 태종은 하륜을 자신의 장자방(장량)이라 했다.
초은 이인복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이어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선배인 정도전, 정몽주, 조준 등을 만나게 되었다.
정몽주의 문하생 권근, 이인복의 동생 이인임과도 가까이 지냈고, 이인복은 하륜의 사람됨을 보고 동생의 딸과 결혼을 시켰다.
공민왕 말년부터는 신진사대부와 가깝게 지내다가 정도전 등의 권고로 권근 등과 함께 조선의 건국에 참여하였다.
하륜은 사람의 관상을 잘 보았는데 정안대군 이방원을 보고서 장차 크게 될 인물인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정안대군의 장인 민제를 만나서 간청하여 이방원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이후 그의 심복이 되었다.
정권을 잡게 되는 제1차 왕자의 난과 제2차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의 최측근으로 실질적으로 계획하고 지휘했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정도전이 남은의 첩의 집에서 술을 마신다는 정보를 입수, 정도전과 남은, 심효생 등을 불시에 습격하여 죽이고, 세자 이방석과 이방번을 제거했고, 제2차 왕자의 난에서는 박포 일당의 거병 계획을 미리 파악한 뒤 회안대군 이방간, 맹종 부자와 박포를 체포, 박포 일파를 죽이고 회안대군 부자를 유배시켰다.
태종 즉위 후 적서 차별, 호패법, 신문고, 저화(화폐) 사용 등을 건의, 불교를 비판하고 명나라에 자주 왕래하여 외교에도 공이 컸다.
후에 인사 청탁을 많이 받는다거나 정책을 태종과의 밀담으로 추진해 나간다는 비판을 샀다.
- 공민왕14년(1365) : 문과에 급제, 이인미의 딸과 결혼.
- 공민왕17년(1368) : 감찰규정을 지내고 있을 때 신돈을 공박하다가 좌천/파직 됨.
- 공민왕20년(1371) : 신돈이 사형당하자 복직되고 교주·강릉 도찰방에 오름.
- 우왕6년(1380) : 성균관대사성으로 승진했으나 모친상을 당하여 관직에서 물러남.
- 우왕9년(1383) : 어머니 3년 상을 마친뒤 복직.
- 우왕11년(1385) : 명나라의 사신을 서북면에서 영접하는 일을 맡음.
- 우왕14년(1388) : 최영의 요동 공격을 불가능하다며 적극 반대하다가 양주로 유배. 최영 처형 뒤 복직.
- 공양왕3년(1391) : 전라도도순찰사가 되고 조선의 건국에 참여.
- 공양왕4년(1392) : 고려가 멸망하자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하였으나, 이성계가 즉위 후 경기좌우도관찰사에 기용.
- 태조2년(1393) : 한양 천도 적극 주장.
- 태조4년(1395) :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했으나 곧 기복되어 복직.
- 태조5년(1396) : 명나라 홍무제가 표전물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정도전을 소환하였는데, 대신 명나라에 들어가 해명.
(이 과정에서 정도전으로부터 계림부윤으로 좌천되었다가 탄핵받고 파면, 수원부에 안치되었다가 복직, 충청도도순찰사가 됨) - 태조7년(1398) : 제1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운 공로로 문하우정승까지 승진.
- 태조9년(1400) : 제2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권력의 실세가 됨.
- 정종2년(1400) :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자 진산부원군, 좌명공신 1등에 책록.
- 태종1년(1401) : 관직을 사임했다가 다시 복귀. 문하생 윤회가 과거에 급제하여 적극적으로 후원.
- 태종16년(1416) : 영의정부사까지 역임하고 노환을 이유로 치사 후 객사.
WRITTEN BY
-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