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이 첫 상처

Daily/Diary 2016. 8. 3. 22:03



약 3달째 야근과 주말근무 수행중이다.

거지같은 주차 시스템 덕분에 야근할 경우는 오후 9시 이전에 차를 지상으로 빼놓아야 한다.

차를 위해서는 수고를 감내해야 하지만, 장기간 야근이 확정된 후로는 아예 지상에 차를 대고 있다.

결국 계열사 모 실장님께서 내 오공이의 광대뼈를 긁어 주셨다.


문제는 오공이를 긁은 뒤 이분의 행방이다.

바쁜 일 때문에 급히 나가면서 내 오공이를 긁었는데 아닐꺼라 생각하고 일단 뺑소니를 하셨고, 나중에 다시 와보니 긁혀 있어서 알게 되었다... 라고...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어짜피 회사 사람일테니 잠시 후에 얘기해 줘도 되겠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왔으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던지 본인 명함을 꼽아 놓던지 했어야 하는데, 자기 아는 사람들한테 저 차 누구차인지를 수소문하고 다니더라.

그 차가 누구껀지는 알아서 뭣할라고. 뭣이 중한지도 모르는... 

그렇게 며칠이 지나 그 소식이 내 귀에 들어왔고 듣자마자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름도 첨 들어보고 얼굴도 모르고...


왜 전화를 안하고 뻘짓을 하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피곤한 일상으로 인해 차 한바퀴 돌아볼 여유도 없어서 상처를 일찍 발견못한 내 잘못도 있었다. ㅜ

빨리 발견하고 잡아내서 이 분의 범행 수위를 낮춰 줬어야 했는데...

암튼 일단 상처부분을 확인하고 사진찍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멀찍이서 담배를 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들어오면서 그 남자는 또 나하고 마주쳤다.

그런데 그 남자가 바로 가해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또 한번 어이가 없었다.

뭐지 그 미친 또라이는... 내가 차 사진을 찍고 있는걸 봤으면 최소한 말을 걸었어야 하는거 아닌가.


일단 그 인간은 차주가 나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 인간을 뺑소니로 신고를 할 것인가 팀장님과 신나게 의논했다.

수소문해보니 그닥 평판이 좋지 않은 인간이라 엿을 준비하는 과정이 매우 즐거웠으나 한번 꾸욱 참고 먼저 보낸 문자에 연락이 왔다.

1층에서 만났고 이 님의 차는 BMW 525 였다.

시작은 방대한 구라였다. 뺑소니 과정과 연락을 하지 못한 이유. 뭐라뭐라 서론이 꽤나 길었지만, 됐고...

피해자가 보험처리 하자는데, 해외로 출장을 떠나는 길이니 4일뒤에 돌아와서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다.

아니... 대물신고만 하고 가라는데, 정말 꼭 오늘 수리해야 할 사정이 있는거 아니면 조금만 기다려 달란다.

가족명의로 되어 있어서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 보통 또라이가 아니었다. 피해자를 앞에 두고 가족한테 양해를 구할 걱정을 하고 있다니...

머언~ 식구긴 하지만 나름 식구라 알겠다고 하고 5일째가 됐다.


다시 한번 미안함을 전하며 지난번 통화했던 방대한 구라를 다시 시작했다. ㅜ쫌... 됐고,

보험처리 하자니까 현금으로 하잔다. 도색 비용으로 백만원에 합의하잔다.

난 범퍼 교환할껀데? 그런데 갑자기 범퍼 교환도 도색해서 나오는거고 그러면 색이 약간 안맞을수도 있고... 이런 개소리를...

그래도 도색보다는 낫지 빙신아...

계속해서 현금으로 쇼부보려는 상태에서 보험처리를 안하려는 이유를 물어보니,

아버지와 차를 바꿔타고 있어서 보험처리하면 아버지에게 연락이 가고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다는 개소리를...

아니 이유가 뭐 이유 같아야 생각을 하고 말고 하지. 고딩이냐. 차 긁은거 가지고 아버지가 보험처리 하는걸 걱정하게.

자기가 잘 아는 덴트집이 있다느니, 시간이 안나면 자기가 내차를 깔끔하게 처리해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겠다느니.

아놔 보험처리 할 거라고 및뻔을 얘기하냐.ㅜ

조금만 더 생각해 달라며 이따 다시 통화하잔다.

몇시간뒤 나는 다시 보험처리 하라고 연락했다. 알겠다며 기다리란다.

한시간쯤 뒤 내일 처리해 주겠다며 문자를 종료했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음주아냐? 무면허아냐? 대포차아냐?


이 때부터 약 24시간 동안 이 냄새나는 자식의 상황은 더 궁금해졌다. 무슨 상황일까.

가해자가 되고나서 연락을 먼저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가능한한 토끼려고 작정했다고 밖에 볼 수 없고.

보험을 꺼려하는 것은 본인 말대로 어마어마한 효자이던지, 차량이 대포차던지, 무면허던지, 뭐 상상할 수 있는건 무쟈게 많다.

대포차에 차까지 은닉해버리면 어떡하지. 헐! 갑자기 걱정이 마구마구.

하지만 결국...


다음날 오후까지 기다리게 하더니 보험처리는 되었고, 꼬라지를 곰곰히 살펴본 내 추측은 다음과 같다.

가해자가 아버지 명의의 차를 빌려 타고 약 1주일 전 내 차 범퍼를 해먹음.(팩트)

사고난 당시 가해자는 이 차에 대하여 보험 미적용 상태였음.(추측)

가해자는 나에게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현금 합의를 원했으나 보험처리쪽으로 대응하자 보험접수를 하겠다더니 쓸데없이 하루를 보냄.(팩트)

이 시간에 가해자는 부모님께 사실을 얘기하고 아버지 보험에 추가 운전자로 등록시킴.(추측)

오늘 오후 본인 이름으로 보험 접수를 함.(팩트)


내가 벤츠를 렌트하고 범퍼를 교체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고마워해라.

나 아니었으면 나쁜 아저씨들한테 몇백을 뜯겼을지 모른다. 훗...


- 160802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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