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9월 30일 일요일


이사라고 할꺼까지 있나. 포장도 없고 짐이 많지 않아서 손이 있던지 말던지 냅다 차에다가 다 실어버리려고 했는데, 한 차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그거슨 나으 착각. 테트리스하듯 차곡차곡 꽉차게 쑤셔 넣었는데... 형 차까지 동원했는데 또 한 차 분량이 남음; 살림도 얼마 없는데 이거이 왠녈. 


- 짐 목록

  • 반팔 / 긴팔 / 바지 / 점퍼 / 정장 / 추리닝 / 속옷 / 양말 / 신발 / 모자 / 가방 / 백팩 / 캐리어
  • 이불 / 베개 / 전기매트 / 헬스기구 / 골프용품 / 수영용품
  • 컴퓨터 / 모니터 / 노트북 / 공유기 / 충전기 / 마우스 / 키보드 / 드라이버 / 헤드셋 / IT책 / 피아노책 / 서류철 / 편지 / 앨범
  • 면도기 / 빗 / 드라이기 / 칫솔 / 치약 / 비누 / 샴푸 / 스킨로션 / 수건 / 걸레 / 피존 / 세제 / 쓰레빠
  • 칼 / 가위 / 도마 / 수저 / 냄비 / 그릇 / 행주 / 김치 / 세탁기 / 서랍장 / 건조대 / 쓰레기통


- 구매 목록

  • 쓰레기봉투 / 대하 / 방향제 / 먼지털이 / LED전구 / 멀티탭 / 장패드 / 냉장고 / 책상 / 의자 / 피아노


써놓고 보니 한차에 안들어가는게 당연한거 같기도 하고... 연휴 내내 조금씩 다 싸놔서 빼먹은건 없는데 택배가 후딱후딱 안와서 고생 좀 했다. 바닥에 앉아서 바닥에 있는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는 어찌나 자세가 안나오던지... 짐 쌀 때는 어머니가 너무 꼼꼼히 싸주셔서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짐 풀면서 느껴지는 정성에 눈물 지릴뻔 했다. 쉴틈없는 빗질과 걸레질로 광이 날 무렵, 집보러 왔을 때 꼼꼼히 본다고 봤는데 커튼에 절묘하게 가려져 있던 에어컨 배관을 뒤늦게 발견하고 그 때문에 닫히지 않는 저 창문을 대체 어찌 막아야 할지... 주인집에 얘기했더니 이 전 사람도 그 전 사람도 아무말 없이 살았다며, 인터넷에 찾아보고 알아서 잘 막아보라며...ㅜ 이 지긋지긋한 슈퍼을.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싫어서 그냥 알아서 잘 막아보는 걸로... 내 명의의 인터넷+TV 도 처음으로 신청했다. 직원들이 요즘은 대리점이나 직영점에 직접 신청하면 호구라고 그래서 인터넷으로 현금 준다는데다가 신청해서 페이백으로 56만원도 받았다. TV 는 거의 안봐서 신청 안하려고 했는데 며칠 살아보면 주말에 할 일 없어서 후회할 거라는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어쨌든 현금 챙겼고. 현금 준다는건 사기일꺼란 생각에 지금껏 핸드폰도 직영점에서만 샀었는데 몇달전 아이폰X 제 값 주고 산걸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가계부를 만들어봤다. 지금까지의 내 씀씀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쓰던대로 계속 쓰고 산다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50대는 처절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어디다가 헤프게 쓴 것도 없는데 어디서 더 세이브를 시켜야 할지... 15만(기름값)+25만(점심)+15만(담배)+20만(술)+10만(레저)=85만 에서 부모님만 뵈러 왔다갔다 하면 기름값은 5만으로 줄일 수 있고 아침은 회사 조식 최대한 배부르게 먹고 점심 굶고 저녁에 퇴근하면서 김밥 한 줄 사가고 주말엔 라면으로 때우면 10만원으로 커버 가능. 어짜피 뱃살 빼고 싶었는데 잘됐다 ㅡㅡ; 담배... 끊어야 되는데... 일단 5만. 술은 마지못해 딱 한번씩만 쏘자 10만. 레저는 레저고 나발이고 이제 필드는 커녕 골프존도 못가겠다. 골프채도 다 팔아버리고 싶은 심정. 다 합치면 5+10+5+10=30. 여기에 술, 담배 끊으면 15 ㅋㅋㅋ. 실화임? 이렇게 해서 매달 70을 더 세이브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월세, 관리비, 공과금, 인터넷만 해도 이전보다 마이너스인데 이것도 노답이네. 나이가 들 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는데 어떡하나 난 지갑을 닫게 생겼네. 결국 내 지난 씀씀이는 흥청망청이었던 걸로... 주변에는 대부분 이렇게 알뜰살뜰하게 사는데 내가 막살았네. 갑자기 답이 안나오니 계속 막 살아버릴까 심각하게 고민중. 밤에 알바라도 뛰어야 되나. 어짜피 돈 수억 모아놨어도, 차를 사지 않았어도 어짜피 코인에 다 날렸을 것을. 지난 날을 자책하지 말자. 딱 코인 탓까지만 하고.


조금 더 나은 50대를 위해 불쌍하게 말고 영리하게 잘 살아보자! 아자!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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