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이사하고 안그래도 좁은 방 한칸에 피아노를 놓을지 말지를 가지고 일주일 정도를 고민했다. 어찌되든 일단 물건 좀 볼까... 하고 신제품 위주로 쭈욱~ 훑었다. 음... 새로나온건 별로 없는데 아직도 비싸다. 나름의 선입견 때문에 커즈와일 보다는 야마하빠가 됐는데 스테이지 피아노... 유튜브에서 김형석님이 인터뷰하는거 보고 와우~ CP4 기본 piano 세팅이 'CFX 콘서트그랜드피아노' 로 되어 있는데 와우~ It sounds very beautiful~ 저렴한 영어에 비해 진짜 그냥 딱 듣기 좋은. 가격대비 더 고급스럽지 않아도 되고 딱 적당한,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딱 내가 원하는 음색이었다. 참고로 야마하 사이트에서 CFX 소비자 권장가는 2억 1천만원이다;;; 뭐... 암튼... DNA에 내장된 장비병 때문에 좋은거는 갖고 싶고, 산다해도 며칠 못가서 먼지만 수북이 쌓일게 뻔하고... 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렇게 피아노가 서서히 잊혀져가던 어느날 우연히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을 보게 됐다. 와우~ 어린것들이 뭔 피아노를 저렇게 잘쳐. 보는 내내 미쳐가지고 왜 내가 시간여행을...?! 고딩때로 돌아가가지고 음악시간에 She's gone 치고 막... 뭐... 그때까지도 멀쩡했는데 딸리는 이해력때매 스토리 검색 좀 해보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말할 수 없는 비밀 OST' 를 연주하는 많은 이들의 동영상을 보고 결정했다. 사자. 고민고만하고 걍 사자. 당장 치고 싶다!


나는 위와 같이 고민과 번뇌 끝에... 그 끝에 결국 또 충동적으로 Yamaha CP4 Stage 를 질러버렸다.


그리고 건반을 처음 두드리는 순간 와우~ 사운드 예술~ 역시~ 그러고는 당장 뭐 칠 수 있는게 없어서 금방 시무룩해졌다. 내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마지막으로 피아노 친지 5년쯤 된거 같다. 그 때도 뭐 쳤다기 보다는 공부 좀 해보겠다고 깔짝거렸으니까 피아노를 정상적으로 마지막으로 친건 정말 오래됐다. 미리 준비해 놓은 '말할 수 없는 비밀' 악보를 보며 그렇게 다시 수년만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역사적인 2018년 10월!)


예전과 한가지 달라진건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aka Youtube)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연주들은 증거가 없다. 본 사람도 없고 들은 사람도 없다. 내 기억에만 존재하고 곡의 90% 이상은 이제 칠 수도 없다. 한 20년 전에 피스 1000장 정도는 누군가에 물려주고 너덜너덜해진 책은 거의 버렸으니. 지금이라도 유튜브에 올리고 공유할 수 있다는 문명에 감사해야지. 사람들 시선을 필요 이상으로 느끼는 나에게는 더욱더 감사할 일이다. 생각해보면 고딩때까지만 해도 긴장 같은거는 전혀 안했었는데 군대 다녀오고 나서 부턴가... 예전만큼 실력이 안나오다보니 자신감도 없어지면서 이상한 습관들이 많이 생겼다. 연습은 철저한 비공개, 어쩌다 볼륨을 높였다가 한 번이라도 틀리면 베리머치 자괴감 드는... 그래서 누구 한명이라도 옆에 있으면 틀릴까봐 긴장하고 손에 땀흐르고 결국 또 미끄러지고. 난 지금도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무대에 있는 상상만하면 손에서 눈물 떨어지듯 한 방울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걸로 군면제를 추진해보려 했으나 어림 없었음;) 그냥 옛날 만큼 못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가 싫은거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시간들여서 열심히 치지도 않으면서.


CP4 산 첫날은 너무 좋아서 9시간 정도 쉬지 않고 쳤던거 같다. 물론 첫날만... 그 뒤론 허리 아파서 2시간도 앉아 있기 힘들다. 독립후에 하루 대충 밥 2시간, 잠 5시간, 운동 3시간, 업무 9시간으로 계산하면 하루중 평일 5시간, 주말은 15시간 정도의 개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야근과 약속만 따로 없다면. 피아노 선수도 아니고 저시간을 다 할애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마음만 먹으면 피아노 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외풍 때문에 손시렵고 발시렵고 하지만 아직 참을만 하다. 그 고통을 견디며 시간을 적당히 활용해서 유튜브에 한 곡씩 소장하는 재미를 찾았다. 그러나 재미를 느낀지 약 한 달만에 '이게 또 뭣허는 짓인가' 하여 다시 팔아버리려다가... (조증인가벼 ㅜㅜ) 힘겹게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는데, 마치 금연중에 흡연의 욕구를 심하게 한번 팍! 받았다가 그걸 견딘 느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재능은 없지만 배운게 아까워서 다시 잡기는 했는데, 이 시간에 개발 공부를 더하든 투잡을 뛰든해도 션찮은데 왜 또 피아노를... 그 타이밍에 '말할 수 없는 비밀' 만 보지 않았어도... 마냥 좋아서 무언가를 할 나이는 지났는데 혼자 사니까 그래도 될 거 같기도 하고... 뭐 이 답 안나오는 문제는 20년째 그대로다 고만 하자. 일단 ㄱㄱ~


...근데 편곡 공부는 언제하지...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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