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남의 고민

Daily/Diary 2022. 9. 27. 00:11

 

간만에 가족사진 한방 찍었다. 반려식물들과 함께 한지 4주 정도가 되었다. 공기정화를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흙이 빨리 안말라서 걱정되고, 귀한 햇빛 따라다니면서 옮겨주고, 미세먼지가 들어오든 말든 통풍 열심히 시켜주고, 갈변한 부분 없는지 체크해주고... 반려라는 단어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 나에게 맑은 공기를 선물해 달라 들여오긴 했지만 약하디 약해보여 조금만 방심하거나 실수하면 언제 죽을지 몰라, 내가 돈주고 사와서 그들을 케어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처음엔 햇빛 없이도 잘 자란다고 하여 들이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 뜻은 잘 큰다게 아니고 잘 안죽는다는 뜻이었다. 식물이 자라려면 햇빛을 많이 봐야 하는데, 남향을 두고 뷰 좋은 북향을 선택한 바람에 아이들이 아침에만 한 30분 정도씩 햇빛을 보고 있다. 그마저도 햇빛 먹여줄라고 그 좁은 곳에 옹기종기 모아논걸 보면 개속상. 그러면서 계속 사고 있음. 커튼 때문에 뷰는 보이지도 않는데... 바보같은 선택을 했다.
 
처음 아이들이게 물을 준 이후로 대부분 20일 정도가 됐다. 대부분 1주일마다 물을 먹어야 하는 애들인데, 방안에 환경이 좋지 않은지 이상하게 속흙이 잘 안마른다. 아마도 1주일마다 물을 줘야하는 애들은 하루에 6시간 이상 햇볕을 쬐는 환경에 있는 애들일 것 같다. 우리 애들은 하루에 기껏해야 아침 1시간 정도... 그나마 통풍이라도 열심히 해주고 있기는 한데, 잘 되고 있는건지 아닌건지 흙이 안마르니 뿌리 썩을까봐 물을 더 줄수도 없다. 인간들처럼 규칙적으로 먹으면 얼마나 좋아. 최근까지 장마에 태풍 때문에 습도가 좀 높았다고 치자. 그래도 얼마전까지는 꽤 더웠고 통풍에 햇볕까지 나름 줬는데 왜 안말라? 요즘 같은 온도에도 안마르면 겨울에는 한달에 한번만 먹을꺼야? 후... 고수가 옆에 있으면 좋겠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면 좋겠는데 혼자 끙끙앓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안그래도 얼마 안들어오는 볕이 점점 짧아지고 있고, 기온까지 내려가고 있어서 더욱 걱정이다.
 
그 와중에 벌써 식구가 열여덟로 늘었다. 안죽이고 돈값(?)하기 위해 유튜브를 많이 참고하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내 질문에 즉답을 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지식들이 조금씩 쌓여가는 것 같다. 잘자란 식물들 자랑하는 채널 말고, 화원집 사장님들의 고급 스킬이나 분갈이 방법도 보고 있고, 비슷한 실내 환경에서 수년간 키워온 경험담을 풀어주는 채널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초식남' 채널은 식물들을 죽이는 방법을 잘 알려줘서, 그 짓만 안하면 오랫동안 키울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이 분의 가장 공감가는 얘기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최대한 물을 주지 않는 것이다. 과습으로 뿌리가 썩어서 죽는 경우도 있고 건조해서 말라 죽는 경우도 있지만, 말랐을 때는 이파리가 신호를 보낸다던지 일정 기간 죽지 않고 버틴다는 얘기다. 조급해 하지말고 여유있게 참고 기다리다가 물을 주라는 의미인듯? 하지만 과습일 때 계속해서 물을 주는 경우는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썩어가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 흙마름 상태를 보여주는 화분이 있으면 더 좋을텐데! 또 하나는 화분에 너무 많은 정성을 쏟지 말라는 것이다. 화분은 대부분 물/햇빛/바람에 의해 알아서 잘 자라기 때문에 나처럼 틈날때마다 잎 닦아주고 매일같이 젓가락 쑤셔대고, cctv 달아서 오늘은 햇볕을 얼마나 먹었는지 체크하고 이렇게 해봤자 환경에 따라 죽을 녀석은 죽고 살 녀석은 산다고... 무책임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식물은 공들이는 노력에 비해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신경써 주는 것에 비하면 생각처럼 안크고, 방치하면 생각보다는 잘 큰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식물이란 것이 가만히 내비둬도 환경에 맞춰 살 놈은 살게되니 적응 못하는 놈은 아무리 옆에서 물고 빨아도 오래가기 힘들다는... 사람은 그저 필요로 할 때 물이나 주면 된다는 말 같다. 식물 키우면서 물도 안주는 사람은 없을테지만. 이 두가지를 생각하면 그래도 마음이 좀 놓인다. 선수들도 키우다보면 죽는 일이 허다하다고 하는데(인증된건 아니지만) 내가 뭐라고... 방치해도 된다하니 잘키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살짝 벗어난 느낌.
 
어쨌든 난 화분의 70% 정도 이상의 흙이 말랐을 때 물을 주려하고, 물 주면서 이파리 잘 닦아주고(물은 약 20일에 한번씩 주니까 이 정도는 하겠지), 집에 있을 때마다 통풍 관리, 출근하면서는 서큘레이터 틀어주고, 가장 중요한 자리배치는 나이순, 새순 가진 화분 순으로 명당자리에 놔주고 출근한다. 대품들은 거의 햇빛을 못본다. 햇밥은 아이들에게 양보하렴. 죄책감이 들긴하지만 구름낀 날은 양심껏 형광등이라도 켜고 출근한다. 식물조명도 일단 대기중이다. 근데 이건 대충 키우는게 아닌거 같은데... 언젠가 다 귀찮아지는 순간이 와서 방치하게 되더라도 물은 잘 주자! 이 와중에도 요즘 폭풍성장 중인 뱅갈고무나무에게 감사해 하고 있다. 1주일 동안 다섯잎이나 두둥! 동시에 여러 아이들이 잘 자라면 케어하기 힘들 것 같은데 정말 다행쓰~

 


WRITTEN BY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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