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5. 30
이번주 토요일 기상 체크 완료. 거의 최고의 날씨. 한 주 쉬고 싶었는데 언제 또 구름끼고 비오고 할지 모르니 날씨 좋을 때 놀아야지. 최근 가고 싶었던 산 중 설악산이냐 오대산이냐를 고민하다가 일단 설악산의 소공원에서 시작하여 대청봉 찍고 공룡능선으로 내려오는 공홈상 17시간 20분짜리를 도전하고 싶었다. 보통 내 걸음으로 1/3 정도 줄어드니 12시간 정도(?)면 가능할 듯 했다. 그리고 만약 몸이 말짱하면 혼술 때리고 속초서 자고 담날에 오대산 천왕봉 코스 도는 걸로 계획을 세웠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일단 목표를 높게 잡고 저녁 9시에 잠을 청했고 11시 반쯤 모기콜 당해서 한시간 먼저 일어났다. 시간적 여유를 조금 누리면서 이틀치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 4시에 입산할 수 있도록 시간 맞춰 출발했다.
* 예정 코스 (설악동으로 올라 대청봉에서 턴하여 공룡능선으로 내려옴)
설악동(소공원) - 비선대 - 희운각대피소 - 대청봉(6:40) - 희운각대피소 - 마등령삼거리 - 비선대 - 소공원(17:20)
* 실행 코스 (설악동에서 올라 대청봉 찍고 고대로 내려옴)
설악동(소공원) - 비선대(50분) - 양폭대피소(2시간) - 희운각대피소(3시간) - 소청봉(3시간50분) - 대청봉(4시간30분) - 희운각대피소 - 비선대 - 소공원(9시간)
새벽 3시 반쯤 설악산에 잘 도착했다. 한달 전에는 대부분 구간이 통제되서 사람이 별로 없었었는데 오늘은 이 시간에 차량이 꽤나 많다. 역시 설악산 클라스~ 간단히 간식을 먹고 입산하는데(am4:00), 다행히 앞에 한 팀이 있어서 하나도 안무서웠다.ㅋㅋ 동이 트면서 앞지르기 시전하고 한팀씩 제껴갔다. 희운각대피소 전 양폭포쯤 까지는 경사도 심하지 않고 경치 즐기기에 좋다. 양폭포를 지날 쯤부터는 계속해서 가파른 계단이 나타나고, 난 평소에 비해 조금 빨리 지친듯 했다. 아직 지칠 시간이 아닌데, 이상하게 힘이 들었다. 희운각대피소를 지나고 얼마뒤 맞은편에서 등산객을 처음 만났다. 대청봉에서 오는거냐 물으니 오색에서 올라 조금 빨리 보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도 오색이 빠른걸 알고는 있었지만 다양한 경치를 즐기고 원점회귀를 할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한건데, 똑같은 시간에 입산해서 이미 정상 찍고 내려오는 사람을 보니 좀 기운이 빠졌다. 처음 겪은 일이라...ㅋ 난 아직 소청봉도 못갔는데... 그 때부터 힘도 더 들고 지치고... 그냥 꾸역꾸역 올라갔다. 특히 중청대피소에 도착했을 때는 다왔다고 느꼈는데 대청봉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ㅜ 대청봉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이 보였다. 이런 젠장. 꾸역꾸역 올라 드디어 대청봉과 마주했다.(am8:30) 딱 4시간 반 걸렸다. 설악동발 1빠긴 한데... 대청봉 앞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인증샷 찍느라고 시끌벅적 했고 나도 낑가서 겨우 인증샷을 찍었다. 아... 진짜 아줌마들 푼수처럼 떠드는 소리는 정말 듣기 싫다. 내가 이래서 사람들 많을 시간에 등산을 안하는데... 9시도 안됐는데 햇볕도 엄청 뜨겁고 그늘도 없고... 으... 하지만 대청봉에서 보이는 장관을 보는 순간엔 모든 짜증을 잠시 잊었다. 한달전 마주보던 울산바위, 범봉, 칠성봉, 권금성, 화채봉, 동해... 하~ 예술이다. 오르는 내내 설악산은 정말 최고의 산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기다란 계곡과 힘찬 폭포, 웅장한 기암절벽, 다른 수많은 능선들. 제발 날씨가 좋기를 바랬는데, 그 날씨속에 있으면서도 또 구름한점 없으니 그것도 조금 아쉬웠다. 진짜 장관은 운해인데 한번을 못보네...
슬슬 내려갈 코스를 선택해야 했다. 공룡능선으로 내려가면 7시간 정도로 예상하긴 했는데 갑작스런 더위에 정신과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또 무슨 생각에서 였는지 음료와 간식을 거의 차에 놓고 와서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공룡능선을 이 상태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일단 갈림길인 무너미고개까지 내려가려고 했는데 대청봉에서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 무릎에 통증이 시작됐다. 이럴꺼 같아서 등산스틱도 빼들었는데 이건 뭐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아줌마들도 폴짝폴짝 잘 뛰어 내려가는데 또 산과의 외로운 사투가 시작됐다. 무릎이 굽혀지지 않도록 게다리도 해보고 계단에서는 뒤로도 걸어보고 사뿐사뿐도 걸어보고 슬로우로 걸어보고 벼라별 괴상한 자세는 다 해봤지만 안아플수는 없었다. 어짜피 아픈거 그냥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공룡능선은 커녕 4시간이 넘는 길을 이렇게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짜증났고, 산을 오른 것까지 후회됐다. 왜 내 무릎만 이러는지. 아프다고 하산을 안할수도 없는 일이고.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오색에서 원점회귀하는게 백번 나았을 것을... 무리한 스케줄을 잡은 내가 문제지만, 그렇다고 200km 이상을 달려와서 4~5시간 등반하고 집에 오는 것도 꽤 허무한 일이다.사진 찍을 생각은 진작에 사라졌고 하산해서 밥도 안먹고 집으로 와버렸다. 제대로 삐졌다. 산한테 삐진건지 내 무릎에 삐진건지...
내가 산이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운동도 되고 장관도 즐길 수 있어서 였는데, 무릎이 이렇게 아프면 사실 등산을 안하는게 맞다고 본다. 헬스를 하다가 어디가 아프면 그만 두면 되지만, 등산을 하다가 아프면... 이건 답이 없다. 등산할 때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진 않았지만, 아픈 몸을 이끌면서까지 등산을 할 정도로 산에 미치진 않았다. 오늘 어쩌다 보니 설악산을 제목으로 이렇게 짜증섞인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 정도로 등산을 하기 힘든 이 상황이 너무 속상해서 그런것 같다. 어찌나 다양하고 요상한 자세로 내려왔는지 이 다음날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는데 엄청 고생했다. 기록처럼 24km 가량을 등산을 했으니... 거기다 12km 정도는 요상하게 내려왔으니 허리가 멀쩡한게 이상한거지. 반나절 지나고 괜찮아져서 다행이었지만 허리까지 이래되니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떻게 다시잡은 허린데... 미녀가 꼬셔서 데리고 가지 않는 한 등산은 두번 다시 안 할 생각이다.(이렇게 말하고 설마 또 다음주에...) 다른 취미 생활 찾아봐야지... 자전거도 타다말어, 등산도 하다말어... 아~ 나 이런 타입아닌데...ㅠ
WRITTEN BY
- 손가락귀신
정신 못차리면, 벌 받는다.